[어쩌구저쩌구 8] 2021년 7월 27일
스파이시 두리안/[어쩌구저쩌구] 수목 (끝) 2021. 8. 8. 13:38 |- [어쩌구저쩌구 8] 2021년 7월 27일, 수목
삶은 무의미한 상태로 존재하는 무언가이지만
나는 그 속에서 가치를 창조해야한다.
보이는 것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찾아낼 때,
혹은 우연적으로 존재하는 무언가에 필연을 느낄 때
나는 내가 진정으로 살아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살아있다는 감정은 무엇일까?
살아있다는 것은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타오르는 불처럼 무언가를 '태우고 빛을 내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살아있음은 상실을 필요로 한다.
온기는 내 안의 무언가가 소진되었을 때 느껴지기 때문이다.
소진된다는 것은 잃어버리는 과정이다.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에 이름을 붙이기 위해서
내가 가진 것들을 끊임없이 내주어야하기 때문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늙어간다.
나라는 존재가 유한하다는 느낌은 공허를 동반한다.
삶은 그래서 고통스럽다.
이러한 사고회로를 반복하다보면
우리가 얼마나 작고 추한지
그리고 삶이 얼마나 거대하고 아름다운지
사이의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 [어쩌구저쩌구]는 [어쩌구저쩌구 8]로 끝이 납니다. 지금까지 [어쩌구저쩌구]와 수목 님과 함께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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