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icy mandarin

이제는 사라져 부를 수 없는 음악을 

흥얼거리는 사람이 있고

거기에 맞춰 춤을 추는 사람이 있다

이제는 사라져 베낄 수 없는 장면을 

기억하려는 사람이 있고 

그걸 막으려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이제는 사라져 만날 수 없는 게 있다는 사실을

하지만 우리는 안다 

사라진 게 분명 어딘가에 있다는 사실을

사라질 것을 베껴 쓰려고 했으나

•  지금까지 [세이브-라이브러리]와 함께 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  다시 만날 그날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조우

지하철을 갈아타기 위해

긴 환승 통로에 들어섰을 때

누가 보도 레일을 반대로 걷고 있었다

아무도 그 사람에게 다가가지 않았다

나 역시

약속에 늦기 싫어 돕지 않고

옆을 지나쳤다 

뭐라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우리 집에 있는 사람처럼

조금 전 일을 반복해서

입으로 외워야 하는 친구가

아무도 모르게 유언을 쓰게 해달라고 부탁했지

거기에는

반대로 걸어야만 하는 사람의 이야기가 있었다

자꾸 되돌아 자기를 수집해야 하는 사람

쌓여가는 여럿의 그 사람 속에

옮겨야 하는 내가 있다

그걸 깨달았을 때

우리가 키우던 식물의 잎사귀가 떨어지고 있었다

각기 다른 

속도와 색깔로

다시 자라나고 있었다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간다

또다시 만난 그 사람이

고개를 뒤로 돌리고

손을 앞으로 뻗은 채

그런 날이 오기는 합니까? 말하고 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니

우리가 손을 잡고 있었고

서로를 바라보며 거꾸로 걷고 있다

그런 날로 가고 있다

•  다음주 일요일(4월 18일)에는 [세이브-라이브러리] 마지막 작업 노트가 업로드됩니다. 

해변의 광장

해변 모래사장 한가운데

통나무로 만든 스툴이 있다

한 사람이 앉아 있고 

저 멀리 바다 위를 걷는 사람을 보고 있다 

모래사장 쪽으로 오고 있다 

거기에서만 볼 수 있는 광경

한가운데에서만

모든 게 반으로 접히기 때문

반으로 접어야만 

비로소 만날 수 있는 면이 있기 때문

사실 

해변으로 다가오는 사람은

반으로 접힌 

직선의 바다를 걷는 것이다 

그 사람의 소문은 금방 퍼져 나간다 

사방에서 몰려드는 군중

빼앗기 위해서다

모래사장 한가운데 

해변의 광장 

아우성이 울리기 시작하지 

스툴을 빼앗기면 바다에 빠져버릴 것이다 

모래사장에 도달하지 못하고 

펼쳐질 것이다 

풍덩하고

넘어지는 통나무 스툴

중앙에서 쫓겨나는 사람과 

바닷속으로 사라지는 사람이

있고

스툴을 

다시 세우려는 사람들이 있다 

아무리 바로 놓아도 

한가운데가 될 수 없다 

반복해서 어긋나는 광경

머리를 맞대자 시작되는 싸움

거기에서 

버려지고 

펼쳐도 숨겨지는 

사람이 

분명 있다

해변의 기차역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해변을 바라보게 된다

기찻길 앞에 해변이 있기 때문에

바다에 있는 사람은 당연하게 기차역을 바라보게 된다

모래사장 쪽 방향 파도를 타고 있기 때문에

기차가 들어올 때마다
모래성을 만들던 아이들은 귀를 막고 달아난다

플랫폼의 사람들은 기차 뒤 바다를 상상한다

기차가 출발하면

새로운 사람들이 플랫폼에 들어서게 되고
조금 전 아이들이 모래성을 찾을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계속해서 잊어버리는 모래성의 위치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결코 그 위치를 알려줄 수 없다

늘어나는 불완성 모래성

기차가 들어올 때마다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해
바다에 빠져 죽으려는 사람이 있고

플랫폼의 사람들은 그 사람을 바라보게 된다

기차 경적이 들려도 뒤돌아보지 않아

그때를 기회로 삼는

철도에 뛰어들어 죽으려는 사람이 있고

해변의 사람들은 그 사람을 바라보게 된다

서로가 서로를 보고 있다

너무나 멀다

잠

교실 안으로 스며드는 햇빛

비스듬한 창문의 모양이 내 옆 잠든 친구 등 위로 생겨난다

​

친구는 잠들기 전 잠의 기간을 예감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니 깨우지 말아 달라 했다 

​

등교할 때마다 친구는 바뀌지 않은 자세로 있었다 하지 못한 인사를 셈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래 

​

코를 골지도 몸을 뒤척이지도 않았다 

​

선생님은 잠든 친구를 깨워보라 했다 

오늘 깨어나기로 약속한 날이라고

​

친구는 흔들어도 일어나지 않았다 

불면의 시간만 등에서 빠져 나가고 있었다 

​

나는 잠과 바꿀 수 있는 것에 관해 생각했다 

​

등 위의 창문은 점점 닫히기 시작했다

교실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밤이었다 

​

잠과 바꿀 수 없는 것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잠

집에 도착했을 때 

누가 나의 침대에서 자고 있었지만

깨울 수 없었다 

그 사람 코골이가 너무 깊어서

그 사람은 코를 골다 갑자기 멈췄다 

내 이름을 부르고 

다시 코골기를 반복했다 

나를 아는 사람인가 확인하기 위해

머리까지 덮인 이불을 들췄을 때

잠든 사람의 얼굴이 있었고 

나도 잠들어버렸다 

잠속에서 

그 사람과 나는 서로의 잠을 지켜주자는 약속을 하고는

한 침대에 나란히 누워 

눈을 감는다 

깨어나지 않을 건가요? 물으니 

아무 말이 없어서 

저기요. 하고 옆을 바라보니

그 사람은 잠에 도착했고

코골이만 남아

나만 잠에 들 수 없었다

약속을 시작하는 방법이 사라져

다시 눈을 감는다

잠으로 가는 이 세상의 온갖 주문을 외워본다

집에 도착했을 때 

내가 나의 침대에서 자고 있었지만 

깨울 수 없었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이미 아무 소리도 없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