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힌 방 1] 2021年 01月 29日
스파이시 바나나/[다이어리] 2021. 1. 29. 02:09 |요즘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하고 싶은 게 없어서가 아니다. 하고 싶은 마음이 잘 생기지 않아서다. 그 마음을 어떻게 되찾을 수 있을까. 마음을 찾는다는 게 가능한 일이긴 한가. 이런 복잡한 생각들이 날 괴롭히지만 그럼에도 난 매일 간절하게 마음에게 말을 건다. 다시 날 찾아와달라고. 찾아올 수 없다면 내가 찾아가겠다고. 그래서 난 여러 사람들의 일상을 들춰보며 의욕 되찾기 위해 노력한다. 여러 사람들의 마음과 그 마음의 힘을 받아보려 한다. 그 힘으로 나는 가끔 편안한 잠을 자고, 그 잠에서 깬 후 커피를 내려 마시고, 집 바깥으로 나가 산책을 한다. 친구들이 찍은 사진들을 구경하기도 하고, 내가 찍은 사진을 친구들에게 보여주기도 한다.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들으며 청소도 한다. 책상 앞에 앉아 책을 읽어보기도 하고, 이렇게 글을 써보기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쉽지는 않다. 뭔가를 하다가 금방 그만둔다. 그러고 멍하니 빈 벽을 바라본다. 빈 벽을 바라보는 시간을 셀 수 없을 정도로.
2021년이 되었고, 이건 나의 새해 첫 일기다. 3~4년 전 나는 꾸준히 일기를 쓰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일기 쓰기를 그만두게 되었다. '이제 일기 그만 써야지.'와 같은 다짐이 생겼기 때문은 아니었고 그냥 갑자기 쓰지 않게 되었다. 정말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아마 그때는 2018년 여름이었는데,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땀이 흐르던 날이었다. 난 닫힌 방 안에 있었고, 집에 에어컨이 없어 선풍기 바람에 더위를 맡기고 있었다. 그날 난 일기를 쓰기 위해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매일 일기를 쓰던 시기였다) 나에게는 일기를 쓰기 전 지나간 일기를 보는 습관이 있었는데,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지난 일기들을 읽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것들을 읽으면 읽을수록 땀이 막을 수 없을 정도로 줄줄줄 흘러내리는 게 아닌가. 얼굴도 점점 심하게 붉어오르고. (더위 때문은 아니었다) 더 읽다가는 내 땀이 방 전체를 가득 채울 것 같아 일기장을 덮고, 침대로 향했다. 그러고 난 잠이 들었다. 눈을 떴을 때 20시간이 지나있었다.
아마 그때의 나에게 일기를 쓰는 행위, 특히 그걸 다시 읽는 행위가 버거웠던 것 같다. 피하고 싶은 나의 모습이 일기에 있었으니 그럴 수밖에. 그 당시 내가 일기를 쓰는 이유는 지금과 같은 이유였는데, 내 정신질환을 기록하기 위해서였다. 일기의 대부분은 나의 상태와 생각에 대한 것이었다. 다시는 맞이하고 싶지 않은 무기력하고 우울한 순간이 거기에 있었다. 난 내 일기 안에서 오랫동안 잠을 자고, 오랫동안 잠을 잤다는 사실로 자책하고 있었다. 그리고 깨어있는 짧은 시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로 자책하고 있었다. 반복되는 자책이 일기 안에 가득했다. 일기장에 그것들을 적을 때에는 '그래, 이렇게 계속 기록하다 보면 언젠가 괜찮아질 날이 올 거야.'라고 생각했을 거다. 하지만 다시 그 기록을 목격했을 때에는 '내가 이렇다고? 정말 나아진 게 단 하나도 없네, 난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거지?'와 같은 생각에 괴로웠을 거다. 내 정신질환이 절대 사라지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무서웠겠지. 그 이후 지금까지 난 일기를 잘 쓰지 않았다. 일기 쓰기를 망설였다. 지난 나와 나의 정신질환과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다시 무너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일기를 쓰지 않는다고 내 상태가 나아지지는 않았다. 사실 지금 내가 어떤 상태인지 잘 모른다. 일기를 쓸 때는 이러지 않았는데. 예전에는 끔찍하게 나와 마주하는 게 싫었는데, 지금은 내가 나 자신을 알 수 없어 혼란스럽다. 내 감정을 감각할 수가 없다. 내가 우울한지, 화가 나는지, 울고 싶은지, 황당한지, 기분이 나쁜지, 웃고 싶은지, 행복한지, 무기력한지 단 하나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예전보다 더 오랜 시간 잠을 자고, 더 자주 눈물을 흘리고, 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더 멍하니 있는다. 막막하다는 생각이 나지도 않는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와 같은 불안도 없다. 전부 멈춰버린 사람의 상태가 이럴까? 생각한다. 난 모든 걸 포기해버린 걸까? 포기하는 게 나쁜 걸까?
그래서 나는 다시 일기를 써보려고 한다. 닫힌 방 안에 앉아 차근차근 내 시간을 포착해보려 한다. 내가 쓴 일기를 다시 볼 때 보잘것없다는 생각이 들고, 마음이 답답해져도 괜찮다. 내 정신질환이 나아지지 않아도 괜찮다. 나를 잃지 않기 위해 계속 써보려 한다. 조급해하지 않으려고 한다. 이렇게 일기를 쓰는 것도 무언가를 해내는 일이니까. 두려워하지 않으려고 한다. 닫힌 방에서 나는 계속 쓴다. 난 계속 지난 나와 만나보려 한다.
( * 이건 내가 닫힌 방에서 멍하니 있을 때 즐겨듣는 노래다.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꼭 방 안이 꽉 차는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