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7년 7/13 (금), 무림고수 

 

 

  과거의 일기를 통해 과거 내 주변의 사람들을 돌아보자는 기획으로 시작한 [복습]이었다. 그 기획에 충실하지 못하고 끝이 나는 것 같아 아쉽기만 하다. 그동안 쓴 글들에 대해 생각해보면 여전히 나에서 벗어나지 못한 글들이었을 뿐만 아니라, 다른 누군가에 대해서도 충분히 생각하지 않은 채 그를 또다시 내 멋대로 해석해버리는 못할 짓을 저지른 글들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복습이 아니라 오역 또는 억지스러운 번역이 아니었나 생각이 든다. 

 

  또 [복습]을 시작할 때는 그 존재의 거대함을 몰랐지만 계속 글을 쓰게 되면서 생각하게 된 사람들이 있다. 어딘가에서 [복습]을 읽고 있을 얼굴을 모르는 사람들이다. 생각해보면 독자가 오직 나인 일기가 그들로 인해 더 이상 일기가 아닌 다른 무언가로 변하게 된 것이다. 그것이 두렵기도 하고 매번 도대체 이번 글에서는 무슨 말을 해야할지 머리를 싸매고 좌절하게 하기도 했던 것 같다. 결국 또다시 [복습]을 시작할 때 했던 질문으로 돌아간 것 같다. 다른 사람들에 대해 쓴다는 것은 무엇일까. 다른 사람들이 읽을 글을 쓴다는 것은 무엇일까.

 

  하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사실 이런 의식적인 고민은 불필요했을지도 모른다. 나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써야한다는 강박감이 오히려 글에 쓸데없는 힘이 들어가게 했던 것 같다. 혼자서 쓰기 때문에 그리고 오직 내가 겪은 하루에 대해서 쓸 수밖에 없기 때문에 나 홀로의 세계 밖에 담을 수 없다고 생각한 일기에는 굳이 힘을 들여 찾지 않아도 주위 사람들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었다. 단순하게 하루 일과를 나열한 일기에도 엄마, 동생, 선생님과 친구들은 한 번씩 등장했다. 비록 나의 시점으로 서술된 그들이지만, 사실 내가 그들에 대해 쓴 것이 아니라 그들이 내가 그들에 대해 쓰도록 만든 것일지도 모른다. 

 

  이번 일기도 그렇다. 이번 일기야 말로 오직 ‘나의 장점’에 대해, 있는 것 없는 것을 다 써낼 때까지 오직 나에 대한 일기이다. 하지만 일기 귀퉁이의 메모를 통해 사실 이 일기는 엄마에 청탁 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엄마가 나에게 나에 대해 쓰도록 만들었기 때문에 쓰인 일기인 것이다. 다른 일기들에서 그날의 누군가가 내가 그들에 대해 일기에 쓰도록 만든 것처럼 말이다. 1인칭 시점의 일기마저도 사실 오직 나 홀로 쓴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 또한 [복습]을 마무리하며 짓는 억지스러운 나의 결론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부터 나의 생각 또한 온전한 나의 생각이 아니라 일기 한쪽 귀퉁이에 흘러든 엄마의 메모처럼 다른 누군가의 생각으로 영향 받은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보자. 그리고 이 글의 중얼거림이 또다른 사람의 생각의 귀퉁이로 흘러들어갈지 모른다고 생각해보자. 그렇게 생각한다면 결국 배운 것이 많은 복습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  지금까지 무림고수, [복습]과 함께 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Posted by 스파이시 만다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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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년 7/6 (금), 무림고수 

 

 

 

 

  요즘 가장 큰 행복은 온전히 홀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낀다. 아무리 자신의 삶을 꾸미고 매순간 즐거움을 위해, 또는 어떤 의미를 만들어내기 위해 무언가를 해도 그것을 나눌 사람이 없다면 공허함을 느끼기 마련인 것 같다. 초등학생 때도 시험을 잘 보았을 때, 내가 노력해서 무언가를 이루었다는 기쁨보다 그걸 빨리 엄마와 외삼촌과 공유해야겠다는 설렘이 더 컸다.

 

  같은 생각의 연장선에서 안락사에 대해 생각하기도 한다. 얼마 전 본 연극에서 안락사를 원하는 인물과 그 안락사 요청을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을 하는 의사가 등장했던 것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고 있다. 주위의 누군가가 자신은 늙어서 자신을 돌보아줄 자식이 없기 때문에, 생의 끝에 안락사를 위한 돈 이천만원을 마련해 스위스로 갈 것이라는 말 또한 계속 생각이 난다. 사람은 태어나서 처음 몇 년과 죽기 전 마지막 몇 년을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게 된다. 인생의 끝에서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 인생을 마친다는 선택은 어떤 것일까.

 

  살면서 적어도 스스로를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글을 쓰고, 운동을 하고, 언어를 배우고, 공부를 하고, 연극을 하고, 돈을 번다. 스스로의 작은 성취들에 기뻐하고, 계속해서 세상에 폐를 끼치지 않는 괜찮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적어도 스스로의 행위를 책임질 수 있는 독립적인 사람이 되기 위한 노력이기도 하다. 하지만 만약 삶의 끝에서 또한 스스로를 책임지기 위해 선택하는 것이 안락사라면. 그 죽음은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없는 죽음이 되는 게 아닐까. 

 

  나눌 수 없는 죽음은 본인 스스로 선택하는 것일까. 죽음도 가장 큰 행복처럼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Posted by 스파이시 만다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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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년 6/29 (금), 무림고수 

 

 

  매 쉬는 시간 교실 뒤는 핫플이었다. 아이들은 교실 뒤 사물함과 책상의 맨 끝줄 사이 좁은 공간에 쭈그려 앉아 항상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게 한창은 종이딱지였고 또 한창은 공기였다. 삼삼오오 모인 머리들 사이에 끼려면 당시 유행하고 있는 종목을 할 줄 알아야 했다.

 

  당시 유행했던 종이딱지는 메이플스토리라는 게임의 캐릭터들이 그려진 동그란 모양의 딱지였다. 문방구에서는 오백원짜리 동전만한 딱지 몇 개가 든 작은 곽을 몇 백원에 팔곤 했다. 적어도 그런 딱지를 몇 개는 갖고 있어야 교실 뒤 산발적 소모임에 참여할 수 있었다. 딱지 하나를 걸고 그게 따먹히면 바로 다음 딱지를 내서 게임을 계속해야 했으니 말이다. 아이들은 교실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열정적으로 딱지를 쳤다. 마냥 힘으로 쳐서 되는 것만이 아니었다. 딱지가 잘 안 따먹히도록 그 가장자리를 꾹꾹 눌러줘야 했다. 반들반들한 새 딱지는 그 끝을 판판하게 잘 눌러주지 않으면 쉽게 넘어가곤 했다. 하지만 문방구에서 갓 사 와 광이 나는 딱지를 무자비하게 눌러버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딱지를 눌러버리면 한순간에 그 매력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마음이 약한 초보자가 몇 개 되지 않은 새 딱지를 들고 판에 참여해, 고수인 상대에게 딱지를 한 개 두개 먹혀버리는 경우보다 마음이 아픈 일은 없었다.

 

  나는 ‘종이딱지 시대’에도 투자자본의 부족으로 관람꾼의 자리에 있을 때가 많았지만 그 다음에 온 ‘공기시대’에는 더욱 판에 끼지 못하는 실정이었다. 종이딱지는 딱지를 가진 것만으로도 계속해서 판에 참여할 수 있지만, 공기시대에는 공기세트를 가진 것만으로 부족하여 실력까지 겸비해야했다. 어쩌다 세 명의 공기 판에 끼게 되어도 친구들이 한 번에 서너 개의 단을 지나 몇 점씩 점수를 낼 때, 나는 계속해서 같은 단에서 실수를 하고 다시 내 차례가 될 때까지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요즘 초등학생들은 무엇을 하려나 사촌동생한테 물어보았다. 요즘은 무엇에 투자를 해야 친구들과 놀 수 있는 걸까. 슬라임과 푸쉬팝에 대해 들어보긴 했지만 라떼적 꼰대의 마인드로 ‘그건 친구들과 같이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 요즘 애들은 무언가 하더라도 혼자 할 수 있는 게 좋은 걸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나갔다. 지금 6학년인 사촌동생의 답은 ‘유행하는게 없는데..ㅋㅋ 6학년이라서 그런지 안 해’였다. 지금 와서 마치 춘추전국시대처럼 회상되는 나의 초등학교 시절에 빠져있다 보니 왠지 조금 실망스러운 답이었다. 

 

  * 2007년 당시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문구류의 이미지 자료를 보기위해서는 인터넷검색창에 ‘메이플 딱지’, ‘주몽 학종이’를 검색해보세요. 

Posted by 스파이시 만다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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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년 6/24 (일), 무림고수 

 

 

  초등학생의 방학은 대학생의 방학보다 짧다. 언젠가 어렸을 때 엄마와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가 문이 열리고 대학생으로 보이는 언니가 내리자 엄마가 나에게 “대학생들은 벌써 방학이래. 부럽지?”라고 말한 것이 기억난다. 그렇게 대학생이 된 지금, 그래, 이제는 초등학생보다 빨리 맞은 방학이다. 아니, 사실은 방학이라기보다 종강이다. 방학의 시작이라는 것보다는 지긋지긋한 학기의 끝이라는데 더 기쁘다. 그때 지나간 그 대학생의 언니의 마음도 이랬을까. 

 

  어렸을 때는 어떤 마음으로 방학을 맞이했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방학식을 하는 날은 수업이 빨리 끝난다는 것을 알고 가벼운 마음으로 학교에 갔었던 것이 기억이 난다. 그 후에 ‘이번 방학은 이렇게 보내야지’하고 부푼 마음으로 계획은 세웠었던가. 이때까지도 동그란 시계모양의 방학용 시간표를 그렸었던가. 엄마는 여름방학 기간이 포함된 일기장의 표지는 특별하게 꾸며주곤 했다. 때문에 표지에 ‘신나는 여름 방학’이라고 쓰여 있는 이번 일기장에 담겨있는 이번 일기는 만족스럽게도 초등학생의 신나는 여름방학의 날들 중 하루로 보인다. 

 

  하지만 사실 과거 이 날의 일기는 아직 방학이 시작되기 며칠 전의 일기였음을 확인했을 때 조금 실망했다고 해야 할까. 여름과 방학의 분위기가 물씬 나는 이 일기가 방학 중의 일기였더라면 이번 방학 또한 그렇게 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던 헛바람이 날아가 버렸다고 해야 할까. 돌이 흙이 될 수는 있지만 흙이 돌이 될 수는 없다. 여름방학이 아니었던 그날은 이제 와서 여름방학으로 기억되고 싶은 걸까. 돌이 된 흙을 발견하고 공룡똥이라고 명명한 그날의 여름방학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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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년 6/13 (수), 무림고수 

 

 

  장래희망이라는 말을 쓸 수 있는 나이는 언제까지 일까. 장래희망은커녕 꿈이라는 말조차 자신 있게 쓰기에는 마음이 어려워진 요즘이다. 초등학교 때 매 학년 마다 간략한 자기정보를 써서 제출하던 종이에는 항상 장래희망 란이 있었다. 그것도 하나가 아닌 세 칸으로. 첫 번째 장래희망이 되지 못하면 그 대안책으로 두 번째 정도는 될 수 있는 것처럼. 알사탕 하나를 까서 입 속에서 굴리다가 맛이 질려버리면 쉽게 다음 맛을 하나 까먹을 수 있는 것처럼.

 

  아무래도 장래희망이라는 말의 생김새가 되고 싶은 것을 정하면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길을 제시해줄 것 같이 생겨먹긴 했다. 하지만 현실은 열심히 무언가에 빠져 삽질을 하다가도 고개를 들고 돌아보면 텅 빈 벌판 밖에 안 보이고, 내가 왜 처음 삽을 들었지 의문에 빠지게 되는 상황이다. 다른 삽을 들고 다른 곳을 파 볼까 해도 아무도 말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알사탕 맛을 쉽게 바꾸지 못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너무 쉽게 바꿀 수 있다는 게 문제일까.

 

  글을 쓰면서도 점점 꼬이는 생각 속에서 혼란에 빠지고 있는 지금이다.

Posted by 스파이시 만다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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