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습 15] 2007년 7/13 (금)
스파이시 두리안/[복습] 무림고수 (끝) 2021. 7. 13. 23:47 |- 2007년 7/13 (금), 무림고수
과거의 일기를 통해 과거 내 주변의 사람들을 돌아보자는 기획으로 시작한 [복습]이었다. 그 기획에 충실하지 못하고 끝이 나는 것 같아 아쉽기만 하다. 그동안 쓴 글들에 대해 생각해보면 여전히 나에서 벗어나지 못한 글들이었을 뿐만 아니라, 다른 누군가에 대해서도 충분히 생각하지 않은 채 그를 또다시 내 멋대로 해석해버리는 못할 짓을 저지른 글들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복습이 아니라 오역 또는 억지스러운 번역이 아니었나 생각이 든다.
또 [복습]을 시작할 때는 그 존재의 거대함을 몰랐지만 계속 글을 쓰게 되면서 생각하게 된 사람들이 있다. 어딘가에서 [복습]을 읽고 있을 얼굴을 모르는 사람들이다. 생각해보면 독자가 오직 나인 일기가 그들로 인해 더 이상 일기가 아닌 다른 무언가로 변하게 된 것이다. 그것이 두렵기도 하고 매번 도대체 이번 글에서는 무슨 말을 해야할지 머리를 싸매고 좌절하게 하기도 했던 것 같다. 결국 또다시 [복습]을 시작할 때 했던 질문으로 돌아간 것 같다. 다른 사람들에 대해 쓴다는 것은 무엇일까. 다른 사람들이 읽을 글을 쓴다는 것은 무엇일까.
하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사실 이런 의식적인 고민은 불필요했을지도 모른다. 나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써야한다는 강박감이 오히려 글에 쓸데없는 힘이 들어가게 했던 것 같다. 혼자서 쓰기 때문에 그리고 오직 내가 겪은 하루에 대해서 쓸 수밖에 없기 때문에 나 홀로의 세계 밖에 담을 수 없다고 생각한 일기에는 굳이 힘을 들여 찾지 않아도 주위 사람들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었다. 단순하게 하루 일과를 나열한 일기에도 엄마, 동생, 선생님과 친구들은 한 번씩 등장했다. 비록 나의 시점으로 서술된 그들이지만, 사실 내가 그들에 대해 쓴 것이 아니라 그들이 내가 그들에 대해 쓰도록 만든 것일지도 모른다.
이번 일기도 그렇다. 이번 일기야 말로 오직 ‘나의 장점’에 대해, 있는 것 없는 것을 다 써낼 때까지 오직 나에 대한 일기이다. 하지만 일기 귀퉁이의 메모를 통해 사실 이 일기는 엄마에 청탁 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엄마가 나에게 나에 대해 쓰도록 만들었기 때문에 쓰인 일기인 것이다. 다른 일기들에서 그날의 누군가가 내가 그들에 대해 일기에 쓰도록 만든 것처럼 말이다. 1인칭 시점의 일기마저도 사실 오직 나 홀로 쓴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 또한 [복습]을 마무리하며 짓는 억지스러운 나의 결론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부터 나의 생각 또한 온전한 나의 생각이 아니라 일기 한쪽 귀퉁이에 흘러든 엄마의 메모처럼 다른 누군가의 생각으로 영향 받은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보자. 그리고 이 글의 중얼거림이 또다른 사람의 생각의 귀퉁이로 흘러들어갈지 모른다고 생각해보자. 그렇게 생각한다면 결국 배운 것이 많은 복습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 지금까지 무림고수, [복습]과 함께 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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