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습 14] 2007년 7/6 (금)
스파이시 두리안/[복습] 무림고수 (끝) 2021. 7. 7. 01:51 |- 2007년 7/6 (금), 무림고수
요즘 가장 큰 행복은 온전히 홀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낀다. 아무리 자신의 삶을 꾸미고 매순간 즐거움을 위해, 또는 어떤 의미를 만들어내기 위해 무언가를 해도 그것을 나눌 사람이 없다면 공허함을 느끼기 마련인 것 같다. 초등학생 때도 시험을 잘 보았을 때, 내가 노력해서 무언가를 이루었다는 기쁨보다 그걸 빨리 엄마와 외삼촌과 공유해야겠다는 설렘이 더 컸다.
같은 생각의 연장선에서 안락사에 대해 생각하기도 한다. 얼마 전 본 연극에서 안락사를 원하는 인물과 그 안락사 요청을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을 하는 의사가 등장했던 것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고 있다. 주위의 누군가가 자신은 늙어서 자신을 돌보아줄 자식이 없기 때문에, 생의 끝에 안락사를 위한 돈 이천만원을 마련해 스위스로 갈 것이라는 말 또한 계속 생각이 난다. 사람은 태어나서 처음 몇 년과 죽기 전 마지막 몇 년을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게 된다. 인생의 끝에서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 인생을 마친다는 선택은 어떤 것일까.
살면서 적어도 스스로를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글을 쓰고, 운동을 하고, 언어를 배우고, 공부를 하고, 연극을 하고, 돈을 번다. 스스로의 작은 성취들에 기뻐하고, 계속해서 세상에 폐를 끼치지 않는 괜찮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적어도 스스로의 행위를 책임질 수 있는 독립적인 사람이 되기 위한 노력이기도 하다. 하지만 만약 삶의 끝에서 또한 스스로를 책임지기 위해 선택하는 것이 안락사라면. 그 죽음은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없는 죽음이 되는 게 아닐까.
나눌 수 없는 죽음은 본인 스스로 선택하는 것일까. 죽음도 가장 큰 행복처럼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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