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지막 공간 : 글 짓는 공간  

 

  두 번째 스파이시 만다린 프로젝트 [공간쓰기]가 마무리되었다.

 

  이번 프로젝트의 시작은 공간을 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첫 번째 공간 서울식물원, 두 번째 공간 이태원 보광동, 세 번째 공간 덕수궁, 그리고 네 번째 공간 부산. 그 공간에서 어떠한 이야기가 펼쳐질지는 순전히 공간을 방문한 이후의 몫이었다.

 

  주제가 정해지는대로 글을 쓰면 되었던 지난 프로젝트와는 달리 이번 프로젝트에서의 가장 핵심은 그 공간을 직접 방문하는 과정이 필수적으로 수반되어야 했다는 점이다. 우리는 한 지점에서 출발해 우리가 설정한 공간으로 이동했고, 공간을 산책하고 둘러보고 탐구했고 다시 다른 점으로 옮겨 글을 작성했다. 공간이 주는 첫인상이나 특색뿐만이 아니라, 그 장소로 이동하기까지의 낯선 풍경들을 마주하는 것, 그리고 기억 속에서 재구성된 공간을 끄집어내는 모든 과정이 하나의 글에 담겼다. 

 

  그리하여 이번 프로젝트의 작업 노트는 각각의 공간을 방문하고 난 뒤 마지막 과정이 이루어지는 장소, 우리가 글을 썼던 공간을 주제로 써 보기로 했다. 

 

 

<데킬라뮬과 믹스키트가 방문했던 공간과 공간쓰기 리스트>

 

1. 서울식물원

식물원의 오후, 데킬라뮬 / 에틀린케라 엘라티오르, 믹스키트

 

2. 이태원 보광동

러브코인, 데킬라뮬 / 0, 믹스키트

3. 덕수궁

이바노비치 세레진 사바친, 데킬라뮬 / 여러 비상구를 열다, 믹스키트

 

4. 부산

부산의 여름, 데킬라뮬 / 바다 불꽃 금지, 믹스키트

 


 

*

 

<데킬라뮬의 공간>

 

  올해 3월, 이사를 왔다. 서울에 생긴 첫 자취방. 이전까지 지냈던 학년마다 다른 방이 배정되는 기숙사는 딱히 거주지라는 느낌을 주지 못했고, 무언가를 써야 할 때마다 매번 다른 카페와 학교의 빈 공간들을 떠돌아다녔다. 늘 한두 명 이상의 사람과 한 방에 함께 살아야 했음에도 밤이 되면 홀로 어딘가에 고여 있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자꾸만 더 밖으로 나가려 했던 것 같다. 다른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으면 '내 공간'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는 기분에서 더 자유로워진 것 같았다. 

 

  그 기분이 끝나지 않을 것 같아서 무서웠던 적이 있었다. 내 공간을 가지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그 공간을 홀로 견뎌내지 못할 것 같다는 불안에서 오는 두려움이었다. 그래서, 어느 날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나 혼자 서 있는 그 공간에서 아늑함과 해방감을 느꼈던 순간이 잊히지 않는다.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았고, 정확히는, 꼭 누군가를 만나지 않아도 되었고, 이 편안한 공간에서 나의 자유를 온전히 누릴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비록 할 일은 많았지만, 그 안락함이 주는 안정은 그 일들을 하나씩 차근차근 해 나갈 수 있도록 힘을 주었다. 

 

  이번 공간쓰기 프로젝트의 글들은 모두 이 공간에서 창작되었다. 대부분은 책상에서 모든 사건이 만들어졌다. 서울의 집에서 글을 쓰고 있지만, 이 공간은 때로 몇 년 전 지냈던 이태원의 낡은 주택이 되기도 하고, 작년에 살았던 비엔나의 집도 되었다가 부산 여행을 하며 묵었던 숙소가 되기도 했다. 그 무수한 공간들이 겹쳐져서인지 이곳에 살게 된지 불과 반 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이미 이곳에서 인생의 많은 시간을 보낸 듯하다.

 

  이제 예전만큼 집에 홀로 있는 적막한 시간이 두렵지 않다. 불안이나 두려움이 불쑥 고개를 드는 순간에도, 예전만큼 불안하지 않다. 그 이유는 아무래도 내가 거쳐온 그 무수히 많은 공간들과, 그 공간 안에 존재했던 시간과 사람들 때문인 것 같다. 이번 공간쓰기 프로젝트를 통해 기억에 깊이 남을 공간의 층을 다시 쌓을 수 있어서 기뻤다. 

 

  스파이시 만다린의 공간쓰기 프로젝트는 끝이 났지만, 앞으로 또 무수한 가능성의 공간들을 마주할 수 있기에 어떤 면에선 새로운 출발을 하는 느낌이다.

  이 기대감을 오래 간직하고 싶다.

 


 

*

 

<믹스키트의 공간>

 

서울식물원, 이태원 보광동, 덕수궁, 부산

이 네 공간을 다녀온 후

나는 내 집에서, 내 방에서

계속해서 썼다.

 

에틀린케라 엘라티오르의 불꽃, 강렬한 최초의 순간을,

언덕을 올라, 복잡한 골목을 지나야 갈 수 있던, 이제는 찾을 수 없는, 독립 단편 영화 상영관을,

나의 유일한 비상구, 덕수궁, 그 너머에서 들려오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함성소리를,

이제는 울지 않는, 아직 나에게 남아있는 부산, 불꽃, 금지,를

 

이 모든 걸 잃지 않기 위해, 고이 보관하기 위해,

 

내 집에서, 내 방에서,

숨죽여 썼다.

 

여기는 내가 방문한 모든 공간이 잠들어있는 집합의 공간

 

 

 

 

 

11월이면 나는 이 공간에서 떠나게 된다.

 

하지만

나는 기억한다,

나만의 방식으로,

 

이 공간에는,

 

내가, 우리가, 내가 다녀온 모든 공간이, 

있었다,

 

나는 기억한다,

나의 공간, 내가 지나온 공간,

 

이제는 안다,

내가 머문 공간에는,

내가 있고,

그때의 내가,

사라지지 않고 계속 있다는 사실을,

 

나는 쓴다,

공간을, 공간 속의 나를,

계속해서 쓴다,

 


  •  지금까지 두 번째 스파이시 만다린 프로젝트 [공간쓰기]와 함께 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  세 번째 스파이시 만다린 프로젝트로 찾아뵙겠습니다.  
Posted by 스파이시 만다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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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 번째 공간 : 부산  

[바다 불꽃 금지], 믹스키트

 

 

  나는 기억한다, 20년 동안 머물렀던 부산을,

 

  나는 기억한다, 부산이 고향이라고 말하면, 바다 자주 갈 수 있어서 좋겠네요 라고 부러워하던 사람을,

 

  나는 기억한다, 집에서 한 시간 거리의 해변가를, 마음먹어야만 갈 수 있던 그곳을, 참 멀구나 생각했지,

 

  나는 기억한다, 바다 앞에 앉아 파도 소리를 녹음한 날을, 신발 안에 서서히 차오르던 모래를, 

 

  나는 기억한다, 바다에 가고 싶을 때마다 들었던 음성 메모를, 집에 가기 전 신발을 털지 않고 모래를 보관하던 습관을, 

 

  나는 기억한다, 나와 바다의 관계를, 그 먼 거리를,

 

  나는 기억한다, 바다 앞에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모든 게 괜찮아질 거라 생각했다,

 

  나는 기억한다, 지금도 가지고 있는, 바다를 마주할 때 느끼는 벅차오름을, 

 

  나는 기억한다, 부산이 아닌 다른 지역의 바다에 갔던 날을, 전부 이어져 있다 상상할 때 느낀 두려움을,

 

  나는 기억한다, 나는 왜 바다에 자주 가지 못했을까, 멀기 때문이었을까, 빠져들어 죽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을까, 

 

  나는 기억한다, 울기 위해 바다를 찾는 사람을, 파도 소리에 감춰진 울먹이는 소리를,

 

  나는 기억한다, 점점 깊어지던 바다를, 이대로 끝나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던 시간을,

 

  나는 기억한다, 부산에서 도망치고 싶다고 소리친 나날을, 부산을 미워한 나날을,

 

  나는 기억한다, 부산을 미워한 게 아니라 내 집을 미워했다는 사실을,

 

  나는 기억한다, 가출하고 걸었던 언덕을, 내 옆을 지나가던 차의 소리를, 어두운 밤의 공포를, 피부로 느껴지는 차가운 공기를, 몸을 데우기 위해 들어간 영화관을, 그 심야 영화를, 영화가 끝나지 않으면 좋겠다 되뇌던 순간을,

 

  나는 기억한다, 나를 증오하는 표정을 가진 가족을,

 

  나는 기억한다, 집을 가득 채우던 한숨과 고함소리를,

 

  나는 기억한다, 엄마가 스카프로 목을 매려고 한 것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던 나를, 빨갛게 변해가던 엄마의 얼굴을, 죽지 말라고 외치던 나의 목소리를, 빨리 잘못했다고 말하라고 협박하던 목소리를,

 

  나는 기억한다, 잘못하지 않았지만 잘못했다고 빌던 나의 모습을,

 

  나는 기억한다, 점점 늦어지던 귀가 시간을,

 

  나는 기억한다, 내가 우울증으로 병원에 다니고 있다고 말하자, 성격을 고치라고 답하던 가족을,

 

  나는 기억한다, 집에서 도망쳐 나와 산복도로 쪽에 살았다, 내 새로운 집은 산 중턱에 있었고, 가기 위해서 모노레일을 타야 했다, 거기에서는 멀리 바다가 보였고, 수많은 집이 보였다, 다행이라 생각했다, 가족이 없어도 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기억한다, 새로운 집에서 보내는 첫 여름이었고, 너무 더워 매일 밤잠을 설쳤고, 악몽을 꾸고, 식은땀을 흘리며 깨어났다,

 

  나는 기억한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부산역에서 아르바이트했던 시간을,

 

  나는 기억한다, 손수레로 식재료가 가득찬 박스들을 옮겼지, 

 

  나는 기억한다, 여러 곳에서 온 사람과 여러 형태의 가족을,

 

  나는 기억한다, 직장으로 가족이 찾아온 날을, 말없이 바라보다 돌아가던 뒷모습을,

 

  나는 기억한다, 내가 잘못하고 있는 건가, 잘못된 생각을 한 날을,

 

  나는 기억한다, 산복도로를 등지고 다시 바다에서 먼 집으로 돌아간 날을, 고개를 숙이고 집으로 들어가던 날을, 가족에게 줄 선물을 고르던 시간을,

 

  나는 기억한다, 언젠가 꼭 부산에서 벗어나겠다고 다짐한 일을,

 

  나는 기억한다, 부산에서 떠날 수 있게 되었을 때, 친구가 부산역에 배웅하러 왔지, 손에 먹을거리를 가득 든 채로,

 

  나는 기억한다, 서울로 올라가는 기차에서 읽은 친구의 편지를, 죽을 때까지 잘 지내보자는 말을, 그 전에 우리가 멀어지면 먼저 우리의 시간이 생각나는 사람이 연락해보자는 약속을, 그 어색한 관계를 지내보자는 다짐을,

 

  나는 기억한다, 서울에 도착할 때쯤 떠오른, 첫 연극을 올리던 날을, 같은 꿈을 가지고 무대에 오르기 전 함께 손을 모으던 순간을, 그 감촉을,

 

  나는 기억한다, 처음 필름을 현상하던 날을, 거기에 남아있던 부산의 바다를, 잃어버린 것을 찾았을 때 오는 벅참을,

 

  나는 기억한다, 이제는 자주 만나지 못하겠다고 울음을 터트린 가족의 모습을,

 

  나는 기억한다, 친한 친구와 다투고 집에 돌아온 날을, 식탁 앞에 앉아 하염없이 흘렸던 눈물을, 이별의 감각을, 그 앞의 엄마를, 내 손을 잡고 아이스크림을 먹는 게 어떻겠냐고, 아이스크림 가게로 향하던 엄마를,

 

  나는 기억한다, 친구들과 교환일기를 썼던 날들을, 그 표지에 그려져 있던 우주 그림을, 우리의 헤어짐을 기쁘게 생각하던 우리를, 꼭 서울에서 만나자고 약속한 우리를,

 

  나는 기억한다, 내가 퀴어라는 걸 친구에게 말한 날을, 비 내린 후 축축한 공원을 걷고 있었지, 축축한 냄새가 났고, 신발이 점점 흙으로 얼룩지고 있었다,

 

  나는 기억한다, 말없이 나를 안아주던 친구를,

 

  나는 기억한다, 내가 금지된, 이상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그 공원에 갔다, 용기를 얻었지,

 

  나는 기억한다, 같은 반에 좋아하는 친구가 있다고 고백한 날을, 숨기지 않아도 되었다,

 

  나는 기억한다, 수학여행 기행문에 좋아하던 친구에 관해 썼던 것을, 그 친구와 탔던 야간 롤러코스터를, 눈을 감고 꼭 잡았던 친구의 손을,

 

  나는 기억한다, 기행문 상을 받게 되었던 날을, 그걸 많은 친구 앞에서 발표해야 했는데, 국어 선생님이 나를 지켜주었지, 아무도 내가 상을 받게 된 걸 몰랐다, 국어 선생님은 나에게 우리 둘의 비밀로 하자고 했다,

 

  나는 기억한다, 어쩌다 내 기행문을 읽게 된 친구가 나를 경멸하며 피했던 일을, 나를 금지된 인간처럼 여기던 그 친구를,

 

  나는 기억한다, 서울로 가기 전 친구네 집에서 잤던 날을, 친구가 잠들고 조용히 울었던 날을, 그 친구가 잠들기 전 했던 말을, 네가 어떤 사람이든 나는 언제나 여기에 있을 거야, 

 

  나는 기억한다, 서울에 도착했을 때를, 무언가 놔두고 왔다고 생각했지, 

 

  나는 기억한다, 답을 듣지 못할 편지를, 어딘가에 보관되어있는 나의 부산을, 다시는 만날 수 없게 된 사람과 시간을,

 

  나는 기억한다, 녹음되어 있는 부산의 소리를 숨죽여 들었던 날을, 어딘가 남겨진 부산 바다의 모래를 발견한 날을, 그 감각이 기억난다,

 

  나는 기억한다, 사랑하는 친구들과 바다에서 불꽃놀이를 하고 있다,

 

  나는 기억한다, 많이 웃었다, 

 

  나는 기억한다, 우리가 함께 있었고, 어둠 속에서 빛나고 있었다,

 

  나는 기억한다, 녹음되어 있는 부산의 소리, 파도 소리보다, 우리의 웃음소리가 더 컸고, 

 

  나는 기억한다, 내 신발에 사라지지 않는 커다란 모래 조각이 아직 있고,

 

  나는 기억한다, 부산을 미워하지 않았어,

 

  나는 기억한다, 서울에서 부산으로 가는 기차에 오른 날을,

 

  나는 기억한다, 내가 사랑하는 새로운 친구들과, 내가 미워하는 부산으로 가고 있어,

 

  나는 기억한다, 우리는 바다에서 불꽃놀이를 하려고 했지,

 

  나는 기억한다, 이제는 바다에서 불꽃놀이가 금지되었지,

 

  나는 기억한다, 바다, 불꽃, 금지,

 

  나는 기억한다, 

 

  나는 기억한다, 바다, 

 

  나는 기억한다, 미래, 바다 앞에 살고 있는, 나의 미래, 아무도 나에게 뭐라고 하지 않는, 금지, 없는, 바다, 앞, 불꽃, 놀이,

 

  나는 기억한다, 이제는 울지 않는다,

 

  나는 기억한다, 함께 부산에 왔다가, 친구가 먼저 서울로 떠났을 때, 

 

  나는 기억한다, 부산 어땠어, 좋지, 여기가 내가 사랑하는 부산이야, 외치고 싶었던 마음을, 

 

  나는 기억한다, 부산에 있는 나를,

 

  나는 기억한다, 부산에 있었던 나를,

 

  나는 기억한다, 계속 남아있는 과거의 나, 부산의 나,

 

  나는 기억한다, 부산을 미워한 게 아니야,

 

  나는 기억한다, 부산이요, 부산 정말 커서 전부 바다랑 가까운 건 아니에요, 저의 집도 바다랑 멀고요,

 

  나는 기억한다, 그래도,

 

  나는 기억한다, 부산에 제가 있었어요, 살았어요,

 

  나는 기억한다,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도 살았고요,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살았고요,

 

  나는 기억한다, 제 친구도, 보이지 않는, 이제는 만날 수 없는 친구도 있고요,

 

  나는 기억한다, 어둠 속에서, 

 

  나는 기억한다, 불꽃놀이, 파도 소리, 금지를 뚫는 웃음소리,

 

  나는 기억한다, 

 

  나는, 

 

  기억한다,

 

  나는 기억한다, 울지 않는 부산,

 

 

 * 조 브레이너드, [나는 기억한다]를 오마주했습니다.


  •  다음 주에는 [공간쓰기] 작업 노트가 업로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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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 번째 공간 : 부산  

[부산의 여름], 데킬라뮬

 

 

차이나타운

 

  마지막으로 이곳에 왔던 게 십 년 전쯤이었나. 도원결의 벽화나 사거리에 서 있는 커다란 레스토랑 같은 부분들은 어렴풋이 기억에 남지만 그것들을 뺀 모든 것들이 낯설다. 장소가 변해버린 건지 내 기억이 바래진 건지는 모르겠다. 차이나타운이라고 쓰인 커다란 간판이 무색하게 길은 좁고, 그리 길게 이어지지 않는다. 그마저도 몇 걸음만 지나면 빅토르 최 음악이 흘러나오는 러시아어로 쓰인 간판이 나오고, 이어 러시아 식당과 가게들, 몽골 음식점 같은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건물들의 번지수를 확인해가며 걷느라 모든 가게들의 입구를 유심히 살펴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골목의 끝에 다다라서야 찾던 번지수가 적힌 건물이 나왔다.

  나는 손에 들고 있는 종이에 적힌 글자와 간판에 적힌 글자를 대조해본다. 내가 읽을 수 없는 문자로 쓰여 있어 마치 그림을 비교하는 것처럼 그렇게 보는 수밖에 없다. 모든 획이 맞아떨어진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 가게 안으로 들어선다. 묵은 종이 냄새가 난다. 네가 도대체 왜 이곳에 있었는지 이해할 수 없지만, 더 이상의 질문은 이미 쌓인 질문 더미들에 질식할 지경이었다. 가게 안에는 아무도 없다. 한눈에 들어올 정도로 작은 가게여서 두리번거릴 필요도 없었지만 나는 괜히 가게를 한 바퀴 돌며 기웃거린다. 온통 한자만 적힌 오래된 종이들과 붓이 걸려 있는 벽, 실로 엮은 종이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는 테이블과 낡은 서류들로 가득한 계산대.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 때문에 공중에 떠 다니는 먼지들이 보인다. 벽 뒤에서 누군가 걸어오는 소리가 들리고, 곧 중년의 남자가 계산대 옆 좁은 문으로 들어온다. 남자는 우두커니 서 있는 나를 발견하고 잠시 당황한 것 같다. 

 

  찾으시는 것 있어요?

 

  순간, 남자가 내가 여기 온 목적을 간파하고 던진 질문 같다고 느꼈다. 하지만 물건이 아니고 사람을 찾으러 왔다고 하면 그가 어떤 반응을 보일까 걱정이 되어 잠시 가게를 둘러보는 시늉을 한다. 남자는 천천히 보라는 말을 남기곤 계산대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나는 너의 동생에게서 건네받은 종이를 만지작거린다. 꼭 찾아. 

  사람을 찾는다는 말에, 남자는 하던 일을 멈추고 나를 쳐다본다. 네 이름을 말하고, 의심을 덜기 위해 내가 이 장소를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를 말한다. 남자는 나더러 누구냐고 묻는다. 나는 나의 이름과 신분을 말하지만, 남자는 다시 한번 더 질문한다. 내가 너와 어떤 사이인지. 머뭇거려선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이곳에 온 건, 너에게 날 증명하고 싶어서였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나의 자격에 대해 따져볼 때가 아니었다.

 

  친구예요.

 

  남자는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고, 내 대답을 들었지만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는다. 다시 돌아가야 하나. 어디 지역 신문사에 광고라도 내야 하나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며 이곳에서 정보를 얻어내는 건 포기해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그가 다시 묻는다. 여긴 왜 왔냐고. 

 

  만나야 해요.

  걔도 널 보고 싶대?

  (사이) 절 안 보고 싶을까요?

 

  남자가 잠시 당황한 표정을 짓는다. 내 목소리가 가느다랗게 떨려 나왔기 때문인가.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덕분에 남자는 네가 몇 주 전 일을 그만두었다는 것, 집이 영도에 있다고 들었다는 것, 그리고 만약에 정말 만에 하나 누군가 자신을 찾아오면 그냥 모르는 사람인 척하라고 했다는 것까지 전부 말해주었다. 나는 감사하다고 연신 허리를 숙여 인사한다. 남자는 그럴 필요까진 없다며, 대신 나중에 너를 만나거든 자신이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은 절대 함구해달라고 신신당부했다. 

 

 

*

 

  영도.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곳이다. 지도에 검색하니 커다란 섬 같은 지역이 표시된다. 대체 이 넓은 곳에서 너의 집이 정확히 어디인지 어떻게 찾아야 할까. 부산 바닥을 전부 다 뒤지는 것 보다야 나았지만 그래도 여전히 턱없이 먼 길이었다. 너의 SNS 친구 목록을 뒤져볼까 싶다가 곧 네가 사라진 시기쯤 너의 계정이 모두 사라졌다는 것을 기억해낸다. 그래도 그중 내가 기억하는 이름 하나쯤은 있을 거야. 나는 네가 고향 친구들과 기획했다던 몇 년 전 전시를 떠올렸고, 페이스북 계정을 열심히 뒤지다가, 마침내 익숙한 이름을 발견해낸다. 그가 여전히 너와 연락을 하고 있기를 바랄 뿐이다.

  나는 장문의 문자를 보내고, 답장을 기다리는 시간 동안 어떻게 하면 덜 불안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을지 고민한다. 너에 대해 무엇을 얼마나 알든 간에 그 친구가 답장을 할 때까지 며칠이든 부산에 머물 생각이었다.

  태양은 피부가 따가울 정도로 뜨거웠고, 해를 가려주는 구름 한 점조차 없었다. 네가 사라진 것이 이 계절 때문이기를 바랐다. 여름은 네가 늘 싫어하는 계절이었으니까.

 

  영도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너의 친구에게서 답장이 왔다. 광안리에서 만나자고.

 

 

광안리 해수욕장

 

   네가 언젠가 보여주었던 사진에서처럼, 네 친구는 서글서글한 인상이다. 만남 장소로 바다를 정한 건 나에게 꽤 낯선 일이었다. 서울에는 바다가 없으니까. 친구는, 처음인데 오는 길이 헷갈리진 않았냐고 친절히 묻고 이런 일로 만나게 되어 유감이긴 하지만 그래도 만나서 반갑다고 말한다. 나는 어디 카페라도 가야 하냐고 물었고 그는 날씨도 좋은데 그냥 바다나 보면서 얘기하자고 한다.

 

  우리는 파라솔 아래 약간의 거리를 두고 나란히 앉는다. 나는 그에게 너와 요즘도 연락하고 지내는지, 아니면 혹시 그쪽과도 몇 달째 연락두절인 상태인지 묻는다. 그는 자기 역시 너와 오랫동안 직접 만나진 않았다고, 솔직히 내가 연락하기 전엔 네가 부산에 있는지도 몰랐다고 말한다. 그래도 나를 만나자고 한 건 네 집이 영도 어디인지 정확한 위치를 알기 때문이고, 또 그동안 네가 어떻게 지냈는지 어떤 일이 있었길래 사라진 것인지 자초 지총을 듣고 싶어서라고 한다. 

 

  그건 모르죠. 저도 그걸 알고 싶어서 여기 온 건데요.

  아.

 

  짧은 침묵이 이어진다. 네 친구가 왜 바닷가에서 보자고 했는지 이제야 알았다. 파도 소리와 멀리서 헤엄치는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소리와 바람 소리가 쉴 새 없이 말의 틈을 채워주고 있었다. 나는 너와 한강에 갔던 일을 떠올린다. 바다 보고 싶다. 물이라면 지금도 실컷 보고 있지 않냐고 하는 내 말에 너는 나를 한심하게 쳐다봤고, 나는 농담이라고 변명했지만 사실 얼마간은 정말 궁금했다. 그날의 한강은 주변의 사람 소리로 정말 소란스러웠는데 지금 내가 보고 있는 바다는 그건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소란스럽고, 조용했다. 시끄러움과, 그 모든 소음으로부터 나를 홀로 가두는 조용함이 동시에 존재했다.

 

  여름이를 찾으러 온 건 맞는데, 사실 저 때문에 온 것 같아요. 여기, 부산. (사이) 항상 갈게, 갈게, 그랬거든요. 여름이가 부산에 있을 때마다. 그래 놓고 한 번도 못 왔어요. 아니 안 왔어요. 그렇게 부산에 가지 않은 날들이 모이고 모여서 지금 같은 상황이 된 것 같아요. 

 

  여름이가 이제 저한테 기대하는 게 아무것도 없다면, 너무 슬플 것 같아요.

 

  네 친구는 내가 말하는 내내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그래서 좋다. 네 친구답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말을 마치고 그도 몇 마디 말을 했는데 모두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는다. 너도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다고, 자기가 봐 온 여름이는 그런 사람이라는 네 친구의 말만 기억난다.

 

 

영도

 

  버스에서 내려서 언덕을 한참 올랐다. 지도를 확인해보고 다시 한참을 더 올라야 한다는 것을 확인하고 잠시 머리가 어질 해진다. 네가 매일 이 길을 걸어 다닌다고 생각하니 조금 웃기기도 하다. 잔뜩 언짢은 표정으로 투덜거리는 너를 생각하니. 어서 도착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도, 거리가 얼마 남지 않을수록 걸음이 느려진다. 지치거나 더워서가 아니라, 문 너머에 네가 있을지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너는 종종 네가 말도 없이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사라지겠다고 말했고, 나는 그런 일은 있어선 안 된다고 말했고 실제로 그런 일은 없었지만, 나는 지금껏 네가 부산에 있다고 믿어왔지만, 만약 지금 내가 가는 그곳에 네가 없다면, 없다면. 

 

  땀인지 눈물인지 알 수 없는 게 얼굴 위로 흘러내린다.

 

  만나면 해주어야 한다고 몇 번씩이나 곱씹었던 말들을 꺼내고 싶었다. 너는 여름을 싫어하지만, 나는 그 여름이 너무 좋다고. 내가 사는 계절에 여름이 없는 건 말도 안 된다고. 그건 그냥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적어도 내 마음이 그렇다는 걸 너는 알아주었으면 좋겠다고. 믿지 않는다는 너의 말을 나는 안 믿을 거라고. 

 

  그림자가 진다. 이제 구름이 생기려나. 

 

  고개를 든다. 여름, 네가 내 앞에 서 있다.

 


  •  마지막 공간 '부산' 두 번째 타자는 믹스키트입니다. 

 

Posted by 데킬라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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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 번째 공간 : 덕수궁  

  [여러 비상구를 열다], 믹스키트

 

 

*

 

 

  살면서 단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공간을 미워할 수 있을까. 

 

  여긴 온통 암흑이다. 너무 깜깜해서 공중에 떠 있는 착각이 들 정도다. 여기는 우주인가? 하지만 두 발바닥 아래 바닥의 딱딱한 감촉이 느껴지는데? 눈을 세게 감았다 뜬다. 여전히 암흑이다. 그렇다. 나는 서 있다. 빛이 사라진 곳에. 저기요! 누구 없어요? 불러도 돌아오는 대답이 없다. 내 목소리 또한 돌아오지 않는다. 없다. 나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다. 어딘가에 갇힌 걸까? 만약 그렇다면 누가 날 여기로 데리고 온 걸까? 내가 어쩌다 여기에 오게 되었는지 기억해본다. 떠오르는 게 없다. 점점 숨이 막혀오고 공포가 밀려온다. 재빨리 이곳에서 빠져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가만히 있다가는 영영 여기에 홀로 남게 될 것이다. 내가 이곳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여기가 어디인지도 모르는데? 두 팔을 활짝 벌려본다. 양옆으로 차가운 벽이 만져진다. 나는 벽을 매만지며 천천히 앞으로 걸어간다. 길다. 복도 같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한참을 걷는다. 양옆의 벽을 믿으면서. 얼마나 걸었을까? 벽의 끝이 느껴지고 이마가 가로막힌 무언가에 닿는다. 두 팔을 앞으로 뻗어 더듬는다. 차갑다. 벽보다 더 차갑다. 불쑥 벽에서 튀어나온 무언가가 만져진다. 동그랗다. 온 감각을 거기에 쏟는다. 손잡이다. 문손잡이. 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다음에 무엇이 찾아올지 알 수 없어도, 그곳이 여기보다 더 무서울지라도, 일단 여기에서 빠져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두 손으로 문손잡이를 잡고 힘껏 돌린다. 빛. 너무 눈부셔서 눈을 뜰 수 없다.

  여러 친구들. 내가 사랑하는 나의 친구들이 여기에 있다. 내가 이곳에 들어서자 다들 왜 이렇게 늦게 왔냐고 묻는다. 여기는 내 방이다. 확신할 수 없지만 내 방처럼 보인다. 지금 내가 사는 곳과는 전혀 다른 곳이지만 내 방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벽에 붙어있는 편지들, 책상 위에 놓인 물건들, 코끝에서 느껴지는 핑크 샌드 향초의 향, 내가 즐겨 읽는 책들이 꽂힌 책장, 여행을 갔을 때 산 내 가방. 이 모든 게 나의 것이니까, 여기는 나의 방이라고 말할 수 있다. 친구들은 손짓을 보낸다. 빨리 와서 여기에 앉으라고, 자신들 옆에. 나는 이 모든 게 익숙하지 않아 조심스럽게 그들 쪽으로 걸어간다. 친구들이 각기 다른 목소리로 각기 다른 이야기를 나에게 전하고 있다. 그게 너무 뒤엉켜있어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내가 그들 쪽에 도착하자 그들 중 한 명이 내 손을 잡고 나를 바닥에 앉힌다. 친구의 손이 만져지니 지금이 거짓이 아니라고 확신하게 된다. 나는 그들 사이에 앉아 그들의 얼굴을 하나씩 살펴본다. 다들 웃고 있다. 나를 바라보면서. 내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아있는 친구가 나에게 어디 갔다 왔냐고 묻는다. 나는 내가 어디 있다 왔는지 정말 알 수 없어서 모르겠어. 라고 답한다. 그리고 나는 내 방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온 게 처음인 것 같다고, 오늘이 무슨 날이냐고 덧붙인다. 내 말을 들은 친구는 눈짓으로 누군가를 가리킨다. 거기에는 이제 사라져 만날 수 없는 친구가 앉아있다. 수우. 수우가 어떻게 여기에 있을 수 있는 거지? 수우는 나를 바라보고 손 인사를 보낸다. 나는 일어나 수우에게 다가간다. 그때 수우는 크게 박수를 한 번 치며 집중해보라고 외친다. 거기에 있는 모든 친구들이 수우를 일제히 바라보고, 수우는 말을 하기 시작한다.

  다들 모여줘서 너무 고마워. 사실 A가 자기 집에 누가 오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너를 찾으러 온 거야. 한동안 만날 수 없어서 모두 걱정했거든. 잠시 사라졌다가 꼭 돌아오겠다고 네가 말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 시간이 너무 길어져서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그냥 이대로 가만히 있어도 되는 건가? 수만 가지 생각이 들었거든. 그래서 내가 널 그리워하는 모든 사람들을 데리고 이렇게 네 집으로 무작정 찾아오게 된 거야. 그런데 집에 도착하니까 네가 없는 거야. 우리는 흩어져서 이 동네를 온통 뒤지기 시작했어. 그래도 네가 어디에도 없는 거야. 어디론가  멀리 떠났나 생각하게 됐지. 우리는 네 집으로 다시 돌아왔고 조금만 널 기다려보기로 했어. 잠시 어디 나간 걸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우리가 여기에 모여서 네 얘기를 하고 있는데 네가 문을 열고 들어온 거야. 여기로, 우리의 곁으로. 갑자기 찾아와서 당황스러웠지? 미안해. 하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널 영영 잃을 것만 같았어. 

  수우의 말이 끝나자 모두가 나를 바라본다. 어떤 말을 해야 할까? 날 걱정해줘서 고맙다고? 여기까지 와줘서 감동이라고? 그리고 내가 설마 너희를 두고 떠나겠냐고? 하지만 결코 나는 사라진 적이 없다. 나는 내가 어쩌다 지금 여기에 있게 된 건지도 알지 못한다. 여기가 어디인지도 명확히 알지 못한다. 그냥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공포스러운 긴 복도를 따라 계속 걸어왔더니 이곳에 닿게 된 것이다.

  여기는 살면서 단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공간, 내 방인 것처럼 여겨지는 공간. 여기에는 세상을 떠난 수우도 있다. 오랫동안 내가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었던 수우가 나를 바라보며 말을 하고 있다. 머리가 복잡해진다. 이렇게 혼란스러운데 내가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나에게는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그건 네가 할 말이 아니잖아. 사라진 건 너였잖아. 돌아오지 않은 건 너였잖아." 

 

  그 순간 수우를 바라보자 수우가 사라진 상태였고, 주위를 돌아보자 아무도 없었다. 나는 텅 빈, 내 방 같은 공간에서 울고 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내뱉으면서.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다. 모두가 사라져 나만 남게 된 이곳에서, 수우가 없는 이곳에서. 내가 들어온 문으로 나가면 또다시 암흑일까? 긴 복도를 따라 다른 방향으로 걸어가면 더 나은 곳에 닿을 수 있을까? 살면서 단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공간을 미워하고 있다.

 

 

*

 

 

이름도 알지 못하는 사람을 혐오할 수 있을까.

 

  지난여름, 서울시청광장에 수우와 함께 있었다. 똑같은 무지개 반팔 셔츠를 입고, 서로의 손을 꽉 잡은 채.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와 함께 있었다. 자기가 입고 싶은 옷을 입고, 여기를 증오하는 사람들을 신경 쓰지 않은 채. 그곳에서는 모두가 우리가 되었다. 우리는 노래에 맞춰 춤을 췄다. 각기 다른 모양의 춤을. 춤을 추며 울기도 했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우리의 힘이 점점 커져만 갔고, 걷잡을 수 없게 단단해졌다. 광장의 우리는 우리가 살아내고 있는 시간에 관해 생각했고, 그 시간이 절대 무너지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 우리는 서로를 껴안고 모든 걸 물리칠 용기를 쌓아갔다. 그 용기로 내일을 살아낼 거라 약속했다. 그런 시간들이 계속될 거라 믿었다.

  나와 수우는 그 광장에서 여러 부스를 구경하고 있었다. 그때 우리는 이상한 기운을 느껴 동시에 누군가를 쳐다보게 되었는데, 그건 바로 수우의 동생이었다. 그 수많은 사람 중 수우의 동생을 발견하게 되어 정말 놀랐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우리를 놀라게 했던 건 수우의 동생이 있던 자리였다. 수우의 동생은 우리가 있는 광장 안이 아니라 광장 바깥, 펜스 뒤 커다란 트럭 위에 있었다. 수우의 동생은 거기에서 이곳과 이곳에 있는 사람들을 반대하는 문구가 적힌 커다란 피켓을 들고 고함치고 있었다. 수우의 눈동자가 떨리고 있었다. 단 하나의 펜스, 그 펜스를 경계로 수우와 수우의 동생이 다른 곳에 있었다. 그리고 광장 바깥의 혐오가 펜스를 뚫고 여기로, 수우에게로, 우리에게로 빠르게 몰려들고 있었다. 

 

  그 당시 우리가 즐겨 하던 게임이 있었다. 그건 바로 연체동물처럼 흐느적거리는 신체를 가진 인간을 움직여 여러 장애물을 뚫고 비상구를 찾아 탈출하는 게임. 우리는 밤마다 각자의 인간을 조종해 열심히 비상구를 찾았다. 우리는 사막에서, 외딴 섬에서, 공장에서, 광활한 우주에서, 골프장에서, 어마무시하게 높은 협곡에서, 회색 벽돌로 지어진 성에서 탈출하기 위해 힘을 모았다. 게임 속 공간에는 우리 말고 아무도 없었고, 그래서 우리는 항상 서로의 손을 잡은 채 하나의 목표를 향해서 움직일 수 있었다. 서로를 도우며 높은 산을 오르고, 뗏목을 타고 강을 건너고, 발이 푹푹 빠지는 갯벌을 건넜다. 이러한 수많은 장애물을 지나 비상구를 찾을 때마다 우리는 세상의 모든 걸 이겨낼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다. 라운드를 하나씩 깰 때마다 서로에 대한 믿음과 애정이 커졌고, 점점 난이도가 높아져 탈출이 어려워져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가 있다면 비상구를 찾을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고, 만약 비상구를 찾게 되지 못하더라도, 그 게임 속에 우리가 영영 갇힌다고 해도, 서로가 있어 괜찮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게임 속 세상이, 이 세상과 같았으면 했다. 우리가 있는 그대로의 우리로 어디에서든 존재할 수 있음을 꿈꿨다. 

 

  불현듯 재빨리 이곳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상구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수우의 손을 잡고 무작정 달렸다. 게임 속처럼. 나는 속으로 이건 게임이야. 아무도 우리를 방해할 수 없어. 우리는 결국 탈출하게 될 거야. 라고 되뇌었다.  우리는 서로의 손을 꽉 잡은 채 인파를 뚫으며 광장의 출구 쪽으로 달렸다. 내 손을 붙잡고 뒤따라오는 수우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아무도 자신을 알아볼 수 없게, 자신을 지켜내기 위해. 그 순간 이곳에 오기 두려워하던 수우의 표정이 떠올랐다. 수우는 동생이 자신과 나 사이를 의심하는 것 같다고 다음에 가면 안 되겠냐고 물었다. 만약 우리가 들키게 된다면 자기가 죽어버릴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난 꼭 가야 한다고, 눈치 보지 않고 서로의 손을 잡고 하염없이 걸을 수 있는 기회라고, 일 년에 한 번뿐인 축제에 너와 꼭 가야 한다고, 내가 널 꼭 지켜주겠다고 떼를 썼다. 수우는 결국 내 고집에 못 이겨 함께 이곳에 오게 되었고,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더는 수우의 얼굴을 바라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지금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건 수우를 안전한 곳으로 데려가는 것이다. 수우가 고개를 들 수 있는 곳.

 

  다행히도 곧 우리는 광장의 출구에 도착했다. 그때 나의 시선을 이끈 건 광장의 맞은편에 있는 덕수궁이었다. 덕수궁, 저기가 우리의 비상구구나. 신호가 바뀌자마자 나는 수우의 손을 더 꽉 잡고 덕수궁으로 달렸다.

 

 

*

 

 

  누구인지 알지 못하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

 

 

  내가 처음 그 사실을 알게 된 건 수우가 떠나고 수우의 컴퓨터를 살펴보았을 때다.

 

  수우는 나에게 종종 음악을 추천해주었다. 수우의 추천으로 듣게 된 음악은 언제나 내 취향이었고, 어떻게 이 숨은 밴드를 알게 되었는지 그 방법을 훔치고 싶을 정도였다. 수우가 추천해준 음악은 대부분 밴드 음악이었는데(내가 밴드 음악을 좋아해서 그랬던 것 같다) 수우를 통해 여러 밴드들을 알게 되어 기뻤다. 들을 음악이 없을 때 도움을 요청하면 수우는 언제나 수많은 밴드들의 이름과 앨범을 추천해주었다. 이렇게 점점 많은 밴드를 알게 될수록 나 역시 밴드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생겨났다. 하지만 나는 악기에 소질이 없었고(기타와 피아노 레슨을 받은 적 있는데 둘 다 일주일도 안 돼서 그만뒀다) 그 막연한 꿈은 쉽게 사그라들었다. 그 대신 열심히 밴드 음악을 듣고 열심히 응원하는 쪽이 되자고 다짐했다. 그때부터 나는 수우만큼은 아니었지만 스스로 새로운 밴드를 찾고, 밴드들의 발매된 앨범을 전부 듣고, 공연에 가기도 하고, 수우에게 (부끄럽지만) 마음에 드는 밴드를 소개하기도 했다. (대부분 수우가 알고 있는 밴드였다) 그러다 나는 내가 가장 사랑하게 된 밴드를 찾게 되었다.

  나는 음악을 추천해주는 음악 평론 사이트를 구경하다 단시간에 1위로 올라가게 된 한국의 밴드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 음악 평론 사이트는 한국에서 발매된 음악뿐 아니라 전 세계의 음악 순위를 매기는 사이트였는데, 우리나라의 밴드가 1위에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 밴드의 음악을 들어본 적도 없었고, 심지어 그 밴드의 이름도 그날 처음 알게 되었기에 정말 놀랐다. 나의 관심은 온통 그 밴드로 향했다. 그 밴드의 모든 걸 알고 싶어졌다. 얼마나 아름다운 음악일까? 어떤 이야기가 담겨있을까? 어떤 게 사람들의 마음을 빼앗은 걸까? 나는 빠르게 그 밴드에 관해 검색해보았다. 하지만 그 밴드에 관해 나오는 정보는 많이 없었다. 데뷔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것, 사실은 밴드가 아니라 한 사람이 가상 악기로 음악을 만든다는 것, 그 사람이 퀴어라는 것, 자신의 음악에는 퀴어로서의 삶이 담겨있다는 것, 죽지 않기 위해 음악을 만든다는 것, 무섭고 두려운 세상에서 도망치기 위한 자신만의 비상구가 음악이라는 것.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정보는 자신을 절대 밝히지 않겠다는 것.

 

  나는 한 사람이 만든 밴드 음악을 듣는다. 누구인지 알지 못하는 사람의 음악을, 헤드셋을 끼고 소리를 최대로 키운 채, 그 사람의 목소리를 듣는다. 가상 악기의 진실을 듣는다. 그날부터 나는 누구인지 알지 못하는 사람을, 그 사람의 음악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 사람을 알게 된 후 나는 수우에게 그 사람의 음악을 소개해주고 싶어졌다. (만약 수우가 알고 있더라도 그 사람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그때 그 사람의 100개 한정 앨범이 발매된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고, 나는 꼭 그것을 쟁취하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 앨범이 발매되는 날 새벽, 음반 가게 앞으로 향했다. 새벽이었음에도 수많은 사람이 줄을 서고 있었고, 나는 다행히도 98번째 순서였기에 앨범을 구매할 수 있었다. 그날 아침, 나는 앨범을 들고 바로 수우의 집으로 향했다. 

 

  수우에게 그 앨범을 선물로 건넸을 때 수우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고, 그 뒤 수우의 동생이 내 손에 들린 앨범을 발견하고는 "이 사람 그 사람 아냐? …" 집어 던지려고 했고, 거기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그 사람의 유일한 인터뷰에는 이런 대답이 있었지.

 

  Q : 다음 활동 계획이 있으신가요?

 

  A : 정확히 말씀드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제 음악이 어디로 가게 될지, 제가 이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아무것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제 음악을 이렇게 많은 사람이 듣게 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그냥 제가 살아남기 위해 만들었던 것이니까요. 그래서 정말 다음을 알 수 없습니다. 이대로 사라지게 될지, 무서운 이 세상에 까발려지게 될지, 그 공포를 가지고도 음악을 만들게 될지, 아님 아무에게도 들려주지 않을 음악만 만들지, 아무것도 알 수 없습니다.

 

  Q. 무엇이 당신을 두렵게 만드나요?

 

 

  A : 내 비상구가 들키는 것, 이 음악이 내 이야기라는 게 밝혀지는 것. 그 누구도 제가 음악을 만드는 걸 '아직' 모른다는 것. 누가 이 음악을 만든 사람이 저라는 걸 알게 된다면 전 죽어버릴지도 몰라요.

 

  내가 처음 수우의 음악을 듣게 된 건 수우가 떠나고 수우의 컴퓨터를 살펴보았을 때다.

 

 

*

 

 

살아보지 않은 먼 과거를 사랑할 수 있을까?

 

  우리는 도망치듯 덕수궁에 들어갔다. 덕수궁에는 여러 형태의 건축물이 있었다. 나는 그것들을 바라보며 걸었고, 수우는 계속 고개를 숙이고 바닥을 바라보며 걸었다. 우리는 그렇게 한동안 말없이 걸었다. 덕수궁에는 처음 와보는 거였다. 수우도 그랬을까? 아님 여러 차례 와봤을까? 덕수궁은 이상하게도 나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었다. 각기 다른 색깔과 재료로 만들어진 건축물을 보고 있으면 꼭 모든 게 괜찮아지는 듯했다. 수우도 그런 듯했다. 수우는 조금씩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나는 고개를 든 수우의 얼굴을 바라보고는 이렇게 말했다. 꼭 여기 게임 속 같지 않아? 수우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수우의 손을 잡았다. 우리는 뜨거워진 모래 바닥을 걸었다. 우리는 시원한 물을 내뿜는 분수를 지나쳤다. 우리는 몸통이 굵은 나무를, 그 나무의 세월을 생각했다. 우리는 고개를 숙이고 궁의 문을 지났다. 우리의 비상구의 모양을 떠올리면서. 그러다 우리는 정관헌 앞에 도착하게 되었는데, 꼭 다른 세계에 와있는 것만 같았다. 외교사절단을 맞이했던 정관헌. 여러 사람들이 이곳에 왔겠지. 각기 다른 모습의 사람들이 여기에서 함께 커피를 마셨을 거야.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서로의 이야기를 들었을 거야. 

 

 

  나는 말했다. 이다음 라운드가 찾아와도 이렇게 다시 비상구를 찾을 수 있을 거야.

 

  그 얘기를 하자 덕수궁 돌담 너머로 수우의 음악이 들리기 시작했고. 

  나는 우리가 소리를 지르며 춤을 추고 있다고 상상한다.

 

  상상이 아니다. 

 

 

 

*

 

 

  다시 나는, 

  여긴 온통 암흑이다. 

  비상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네가 여기에는 없더라도 네가 어디에 있을 테니까.

 

  문을 열면 항상 거기는 덕수궁이고,

각기 다른 모습의 건축물로 가득하고,

수많은 다양한 사람이 있고,

수우가 있고, 

수우의 노래를 들으며,

춤을 추고 있는데,

 

  이제는 없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  마지막 공간 '부산' 첫 번째 타자는 데킬라뮬입니다. 
Posted by 믹스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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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 번째 공간 : 덕수궁 

[이바노비치 세레진 사바친], 데킬라뮬

 

 

러시아 공사관

 

  내가 그를 처음 본 건 1897년 겨울, 러시아 공사관에서였다. 목까지 잠궈 입은 검은 서양식 겉옷 위로 창백한 얼굴이 솟아 있고, 뾰족한 귀와 코는 추위로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하얀 종이 위에 붉은 염료를 몇 방울 떨어트려놓은 것마냥. 그는 왕을 알현하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잘 차려입은 모양새이긴 했지만, 그가 그리 부유하지 않은 생활을 하고 있음은 단번에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그가 누구인지는, 그의 방문을 알리는 관리의 말을 듣고 나서 알았다. 왕이 몸을 피하고 있는 이 공사관을 건설한 사바친. 그 이름을 듣고 내가 잔뜩 긴장한 것이 그의 눈에도 들어왔는지, 그의 시선이 잠시 나에게로 향했다. 나는 차마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볼 수 없었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무슨 말이라도 건네지 않고는 못 배길 것 같아 그냥 안 보는 쪽이 마음 편했다.

 

  그 겨울, 나는 건축 기술을 배우던 학생이었다. 막 서구에서 들어오기 시작하는 새로운 양식의 건축 기술들은 나에게 별세계나 다름 없었고, 그 중 단연 조선에 유래 없었던 양식의 사바친이 지은 건축물들은 책에서만 보던 것들의 현현이었으니 그의 밑에서 일을 배우는 것은 나의 오랜 꿈과도 같았던 것이다. 왕실 건축사로 일하던 스승을 따라 공사관을 둘러보러 간 날, 사바친도 공사관을 방문한 건 우연이었을까 아니면 미래를 예견한 신호였을까. 

 

  1897년 2월, 왕은 거처를 러시아 공사관에서 경운궁*으로 옮겼다. 거의 백여년 정도를 쓰지 않고 있던 궁으로 왕이 돌아가니 궁궐에서 수리해야 할 곳들이 차고 남쳤다. 아직 수습생의 신분이었지만, 나는 스승님을 따라 현장에서 일을 할 수 있었다. 사실, 돕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일이 많았다. 이곳에서의 일을 잘 해내면 스승님의 뒤를 이어 왕실 전속 건축사가 될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왕실 건축가가 되는 것보다 더 나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사바친을 다시 만나는 것이었다. 그는 경운궁 바로 뒤 터에 공사관도 지었으니, 궁 안의 건물을 세우는 데에도 당연히 함께 참여하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바친은 인천으로 거주를 옮긴 뒤 그곳에서 건축활동을 하느라 바빴고, 한성에서는 함께 일을 하기는 커녕 만나보기도 어려웠다. 나는 낮의 일이 끝나면 저녁부터는 러시아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가 다시 한성으로 돌아왔을 때, 그의 밑에서 일을 배우고 싶었고 그러려면 외국어를 공부해야 했다. 무엇보다, 다음에는 눈이 마주치더라도 피하지 않고 말을 걸고 싶었다.

 

  그 해 가을, 조선의 왕은 대한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몇몇 서양인들이 대한제국을 선포하는 자리에 와 있었고, 사바친은 거기에 없었다. 

 

  사바친이 다시 한성으로 돌아온 건 그로부터 2년이 지난 후였다. 그가 돌아오기 몇 달 전 나는 황제의 부름을 받았다. 드디어 황실 건축 기사로 임명받을 때가 온 것인가 의심 반 기대 반으로 찾아간 자리에서 들은 이야기는 전혀 뜻밖의 것이었다. 그들은 내가 러시아어를 얼마나 할 줄 아는지 물었다. 내가 하도 자주 펼쳐보아서 닳아빠진 서양 건축 관련 도서들을 그들이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내가 이전에도 사바친과 친분이 있었는지 물었다. 나는 갑자기 왜 그의 이름이 여기서 거론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내가 해야 할 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은,

 

*

 

정관헌

 

  здравствуйте.  안녕하십니까

 

  십수 번도 더 연습했던 말이지만, 그 말이 가 닿는 대상이 사바친이라는 것이 낯설었다. 그는 놀랍다기보단 반갑다는 눈치였다. 이 나라에 산 지도 벌써 12년도 더 되었으니 조선말도 곧잘 하는 그였지만 모국어로 대화를 나눌 일이 집에서말곤 거의 없을 테니 업무로 만난 사람에게서 그 언어를 듣는 것이 예삿 일은 아닐 터였다. 나는 그가 나에게 친근함을 느꼈으면 했다. 아니, 나는 기필코 그의 신임을 얻어야 했다.

 

  그가 한성으로 돌아온 것은 경운궁 안에 황제를 위한 건물 하나를 지어야 했기 때문이다.

  황제는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가비(커피) 광이었다. 그는 오직 차를 마시기 위한 공간을 따로 갖기를 원했다. 물론, 이것은 한가로이 차를 마시며 풍류를 즐기기 위한 용도는 아니었다. 황제는 궁을 찾은 외국의 손님들에게 항상 가비차를 내어주었는데, 차를 들며 오고가는 이야기는 대한제국의 국제적인 영향력을 확장시키기 위한 밑그림이 되었다. 황제는 겉으로는 오직 사치를 위한 공간인 양 꾸며 놓고 그 안에서 비밀리에 중요한 외교 업무를 처리하려고 하는 것이었다. 나는 황제의 이런 뜻을 전달받았고, 사바친에게 이 정보를 에둘러 제공하여 건축을 보조하는 역할이었다. 나의 스승과 같은 높은 관직의 사람을 쓰지 않는 것은 황제가 우리 둘 사이에서 일이 러시아어로만 진행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거기다, 기존의 건축 관리들과 사바친의 사이가 워낙 좋지 않았기에 새로운 관리를 등용하지 않으면 일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지경이었다.

 

  우리는 합이 꽤 잘 맞았다. 나는 그에게서 그간 배우고 싶었던 서양 건축 기술들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고, 그 역시 내가 열의를 갖고 배우는 것에 크게 감동한 듯 했다. 자신은 얼마든지 이곳에서 선생으로 일할 의향이 있었으나 내내 일만 하느라 시간도 나지 않았고 또, 이렇게 배우고자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도 없었다며 나를 조금 더 일찍 만나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오랜 선망의 대상이었던 그로부터 그런 이야기를 듣는 것은 참으로 보람되고 좋은 일이었으나 나는 온전히 그 마음을 즐길 수가 없었다. 더 괴로운 건, 그런 나의 불편한 마음조차 숨기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굴어야 했다는 것이다.

  처음에 우린 오직 일과 관련된 이야기만을 나누었다. 그건 나의 전략이기도 했다. 그의 사적인 부분을 함부로 건드렸다간 그가 나에게 마음을 열고 자기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기회를 영영 놓쳐버릴 것만 같았다. 그도 나의 개인적인 일에 관해선 그리 자주 말을 꺼내지 않았다. 정인은 있는지, 어떻게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따위의 일들을 간략하게 물어보는 것이 전부였다. 그랬던 그와 내가 크게 가까워진 데에는 그가 나의 스승과 싸움을 벌인 것이 계기가 되었다.

  건축에 필요한 자재를 사는 것은 사바친이나 내가 아닌 다른 하급 관리들이 맡아서 일을 진행했다. 그 과정에서 문제가 생긴 것이다. 사바친이 분명 특정한 자재가 필요하다고 언급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하급 관리들은 그보다 더 값이 싼 불량 자재들을 사오기 일쑤였다. 그들은 건축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 그런 것이라고 변명하였고, 사바친은 그 말을 전혀 믿지 않았지만 나의 스승은 그들의 편을 들었다. 그의 입장에선 당연한 거였다. 스승은, 이곳의 생리도 잘 모르는 이방인이 어찌 그리 거만하게 구냐며 타박했고, 자신과 오랫동안 일해온 하급 관리들을 감싸안기 급급했다. 그의 밑에서 수년간 일을 배웠지만, 나는 이미 사바친의 정밀하게 일을 처리하는 능력에 크게 감복해 있는 상태였다. 그 뿐만 아니라 스승의 편을 들어 사바친과의 사이가 나빠진다면 황제의 임무를 수행할 수 없는 상황이 될 게 뻔했다. 그 일은 황제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고, 그는 여느 때처럼 이 일에 적당히 무관심한 태도를 보였지만, 결국 나와 사바친의 편을 들어주어 불량 자제들을 구입한 하급 관리들은 더 이상 그 일을 맡지 못하는 징계를 받게 되었고, 사바친은 원하던 건축 자재들을 새로 얻을 수 있었다. 그는 이 일로 나를 꽤 신뢰하게 된 것 같았다. 항상 조선 관리들과의 외로운 싸움에 지쳐 있었는데, 내가 자신의 편을 들어주어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었다고. 이번에도, 나는 그저 온건한 미소를 지을 수 있을 뿐이었다.

 

  그 일 이후, 우리는 일할 때 뿐만 아니라 종종 함께 식사를 하러 나가기도 하고, 외곽 지역으로 견학을 나가기도 했다. 나는 종종 그에게 그가 나고 자란 곳은 어떠냐고 물었다. 그때마다 그는 너무 오래전 일이라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자신이 같은 러시아인과 결혼하지 않았다면 말도 잊어버릴 뻔했다고도 했다.

  일 년 정도가 지났을 때, 건물은 어느정도 골격을 갖추어 나갔다. 이쯤부터 나는 언제가 적절한 때일지를 살피느라 그와 있는 시간이 점점 불편해졌다. 그렇지만 혹여 그가 눈치를 챌 수도 있기에 연기를 해야 했는데, 가끔씩 그가 말을 멈추고 내 눈을 들여다보는 순간이 생기면 나는 이미 모든 걸 들켜버렸다는 기분에 사로잡히곤 했다.

 

  1901년 12월, 나는 한 번 더 황제 앞으로 불려갔다. 그는 나에게 일이 어떻게 되어가고 있냐고 물었다. 나는 아직 얘기를 꺼내보지 못했다며, 다만 그에게서 확실한 답변을 들을 수 있게 사전 작업을 하는 중이라고 둘러댔다. 황제는, 나에게 다음 봄이 되기 전까진 어떻게든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고 못박았다. 그의 말은, 내가 사바친과 함께 지낼 수 있는 날도 몇 개월밖에 남지 않았다는 얘기였다. 

 

*

 

  나는 약속 장소에 30분이나 일찍 도착해버렸다. 그가 도착했을 때 너무 초조해보이지 않게 마음을 진정시키는 시간을 가져야 했다. 눈을 감고 숨을 골랐다. 그러고 몇 분이나 지났을까, 누군가 내 어깨를 툭 건드렸다. 검은 겉옷을 입고 모자를 쓴 그가 내 옆에 서 있었다. 겨울에 늘 그렇듯이 뾰족한 코와 귀 끝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는 당연히 자신이 먼저 도착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도 역시 실패했다며, 호탕히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나도 따라 웃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다.

  곧 음식이 차려졌고, 잔을 채울 술도 준비되었다. 우리는 사바친의 고향의 명절을 기념하는 술을 따랐다. 서둘러 취하고 싶은 마음 뿐이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내가 먼저 취해버리면 이 자리를 만든 의미도 없어질 테니까. 나는 그가 술잔을 비우면 바로 잔을 채웠고, 그는 거절하지 않고 받아 마셨다. 조금씩 그의 뺨이 추위가 아닌, 취기로 붉어졌다. 나는 첫 번째 질문을 시작했다. 조선에 와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였냐고. 아무래도 1895년**이 가장 힘든 해가 아니었냐고, 사실 그 해는 조선 사람 모두에게 끔찍한 해였다고. 내 말을 듣자, 그의 눈은 술기운이 올라왔음에도 불구하고 또렷해졌다. 그리고 그의 표정이 무섭도록 굳어졌다. 아직 첫 번째 질문이었을 뿐인데.

  이제 다 끝났구나. 슬픔과 죄책감, 그리고 해방감 같은 것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하지만 내 예상을 깨고, 그는 자리를 박차고 나가지도, 나에게 화를 내지도 않았다. 대신에 그는 입을 열었다.

 

  Это было ужасно. Вы знаете, что я видел в тот день? 끔찍했지. 그날 내가 뭘 봤는지 알아?

 

  그는 그날 자신이 보았던 것들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가 설명하는 내용은 황제가 나에게 보여주었던, 그를 조사했던 베베르의 기록과 똑같았다.  하나도 빠짐없이 똑같았다. 말을 마치고, 그는 등받이 의자에 몸을 기대고 나를 쳐다보았다. 이것이 내가 원하는 답이었는지 물어보는 눈빛 같았다. 혹은, 무언가 다른 걸 바라고 있는 걸 알지만 자신이 해줄 수 있는 얘기는 이게 전부라고 말하는 것 같기도 했다.

  차라리 그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더라면, 그냥 아무 말 없이 자리를 떠났더라면, 아니면 나에게 속셈이 뭐냐고 소리라도 쳤다면. 이렇게까지 수치스러운 기분은 아니었을 것 같았다. 어차피 나는 임무에 실패했다. 그에게서 그 사건에 대해 어떤 새로운 정보도 더 얻어내지 못했다. 그리고 이후에 남은 결과는, 내가 다시는 사바친을 보지 못하는 것 이상으로 끔찍할 것 같았다.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앉아있었고, 그는 혼자 술잔을 채웠다. 그렇게 연거푸 몇 잔을 마시곤, 다시 말을 시작했다.

 나는 이 이야기는 황제에게 전달하지 않았다. 

 

*

 

  1904년, 러일 전쟁이 발발했다. 사바친은 그의 가족들과 쫓겨나듯 조선을 떠나야 했다. 나는 그에게 작별 인사를 하러 가지 못했다. 우리는, 정관헌이 완성된 이후로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지인을 통해 그가 어디로 떠났는지 정보는 얻을 수 있었다.

  나는 편지를 썼다. 한 편은 중국 상하이로, 한 편은 일본 나가사키로, 그리고 다른 한 편은 블라디보스톡과 또 하나는 오데사로. 그에게 고향은 존재하지 않거나 너무 많았고, 어쩌면 조선이 그에게 가장 익숙한 고향이었을 수도 있다. 그가 조선에서 보낸 시간은 거의 이십년이었다. 하지만 그가 겪었던 일은 이곳에서 그를 그저 이방인 목격자로 전락시켜버렸다. 그 자리에서 벗어나고자 부던히 살던 세월을 다시 한 순간에 무너뜨린 건, 나였다. 이것이 내가 그에게 편지를 써야만 했던 이유였다. 

  

  здравствуйте 안녕하세요

 

  나는 단어를 고치고 새로 시작한다.

 

  Привет,  안녕,

 


 

*경운궁 : 덕수궁의 옛 이름. 1907년 고종의 강제 퇴위 후 순종의 즉위와 함께 궁의 이름이 경운궁에서 덕수궁으로 바뀌었다. 

**명성황후가 시해된 을미사변이 일어난 해.

 

+ 이 글은 덕수궁 정관헌을 건축한 아파나시 이바노비치 세레진-사바친(Афанасий Иванович Середин-Сабатин)의 생애를 참고하여 쓰여진 허구의 이야기이다. 그는 1894년 고종의 부탁으로 경복궁 시위대 부대장으로 임명되었고, 1895년 을미사변 당시 현장에서 사건을 목격한 인물 중 한 명이다. 러일 전쟁 이후 그는 중국과 일본, 러시아를 떠돌다가 1921년 사망했다. 그가 어디서 생을 마감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  세 번째 공간 '덕수궁', 두 번째 타자는 믹스키트입니다. 
Posted by 데킬라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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