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 번째 공간 : 부산  

[바다 불꽃 금지], 믹스키트

 

 

  나는 기억한다, 20년 동안 머물렀던 부산을,

 

  나는 기억한다, 부산이 고향이라고 말하면, 바다 자주 갈 수 있어서 좋겠네요 라고 부러워하던 사람을,

 

  나는 기억한다, 집에서 한 시간 거리의 해변가를, 마음먹어야만 갈 수 있던 그곳을, 참 멀구나 생각했지,

 

  나는 기억한다, 바다 앞에 앉아 파도 소리를 녹음한 날을, 신발 안에 서서히 차오르던 모래를, 

 

  나는 기억한다, 바다에 가고 싶을 때마다 들었던 음성 메모를, 집에 가기 전 신발을 털지 않고 모래를 보관하던 습관을, 

 

  나는 기억한다, 나와 바다의 관계를, 그 먼 거리를,

 

  나는 기억한다, 바다 앞에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모든 게 괜찮아질 거라 생각했다,

 

  나는 기억한다, 지금도 가지고 있는, 바다를 마주할 때 느끼는 벅차오름을, 

 

  나는 기억한다, 부산이 아닌 다른 지역의 바다에 갔던 날을, 전부 이어져 있다 상상할 때 느낀 두려움을,

 

  나는 기억한다, 나는 왜 바다에 자주 가지 못했을까, 멀기 때문이었을까, 빠져들어 죽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을까, 

 

  나는 기억한다, 울기 위해 바다를 찾는 사람을, 파도 소리에 감춰진 울먹이는 소리를,

 

  나는 기억한다, 점점 깊어지던 바다를, 이대로 끝나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던 시간을,

 

  나는 기억한다, 부산에서 도망치고 싶다고 소리친 나날을, 부산을 미워한 나날을,

 

  나는 기억한다, 부산을 미워한 게 아니라 내 집을 미워했다는 사실을,

 

  나는 기억한다, 가출하고 걸었던 언덕을, 내 옆을 지나가던 차의 소리를, 어두운 밤의 공포를, 피부로 느껴지는 차가운 공기를, 몸을 데우기 위해 들어간 영화관을, 그 심야 영화를, 영화가 끝나지 않으면 좋겠다 되뇌던 순간을,

 

  나는 기억한다, 나를 증오하는 표정을 가진 가족을,

 

  나는 기억한다, 집을 가득 채우던 한숨과 고함소리를,

 

  나는 기억한다, 엄마가 스카프로 목을 매려고 한 것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던 나를, 빨갛게 변해가던 엄마의 얼굴을, 죽지 말라고 외치던 나의 목소리를, 빨리 잘못했다고 말하라고 협박하던 목소리를,

 

  나는 기억한다, 잘못하지 않았지만 잘못했다고 빌던 나의 모습을,

 

  나는 기억한다, 점점 늦어지던 귀가 시간을,

 

  나는 기억한다, 내가 우울증으로 병원에 다니고 있다고 말하자, 성격을 고치라고 답하던 가족을,

 

  나는 기억한다, 집에서 도망쳐 나와 산복도로 쪽에 살았다, 내 새로운 집은 산 중턱에 있었고, 가기 위해서 모노레일을 타야 했다, 거기에서는 멀리 바다가 보였고, 수많은 집이 보였다, 다행이라 생각했다, 가족이 없어도 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기억한다, 새로운 집에서 보내는 첫 여름이었고, 너무 더워 매일 밤잠을 설쳤고, 악몽을 꾸고, 식은땀을 흘리며 깨어났다,

 

  나는 기억한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부산역에서 아르바이트했던 시간을,

 

  나는 기억한다, 손수레로 식재료가 가득찬 박스들을 옮겼지, 

 

  나는 기억한다, 여러 곳에서 온 사람과 여러 형태의 가족을,

 

  나는 기억한다, 직장으로 가족이 찾아온 날을, 말없이 바라보다 돌아가던 뒷모습을,

 

  나는 기억한다, 내가 잘못하고 있는 건가, 잘못된 생각을 한 날을,

 

  나는 기억한다, 산복도로를 등지고 다시 바다에서 먼 집으로 돌아간 날을, 고개를 숙이고 집으로 들어가던 날을, 가족에게 줄 선물을 고르던 시간을,

 

  나는 기억한다, 언젠가 꼭 부산에서 벗어나겠다고 다짐한 일을,

 

  나는 기억한다, 부산에서 떠날 수 있게 되었을 때, 친구가 부산역에 배웅하러 왔지, 손에 먹을거리를 가득 든 채로,

 

  나는 기억한다, 서울로 올라가는 기차에서 읽은 친구의 편지를, 죽을 때까지 잘 지내보자는 말을, 그 전에 우리가 멀어지면 먼저 우리의 시간이 생각나는 사람이 연락해보자는 약속을, 그 어색한 관계를 지내보자는 다짐을,

 

  나는 기억한다, 서울에 도착할 때쯤 떠오른, 첫 연극을 올리던 날을, 같은 꿈을 가지고 무대에 오르기 전 함께 손을 모으던 순간을, 그 감촉을,

 

  나는 기억한다, 처음 필름을 현상하던 날을, 거기에 남아있던 부산의 바다를, 잃어버린 것을 찾았을 때 오는 벅참을,

 

  나는 기억한다, 이제는 자주 만나지 못하겠다고 울음을 터트린 가족의 모습을,

 

  나는 기억한다, 친한 친구와 다투고 집에 돌아온 날을, 식탁 앞에 앉아 하염없이 흘렸던 눈물을, 이별의 감각을, 그 앞의 엄마를, 내 손을 잡고 아이스크림을 먹는 게 어떻겠냐고, 아이스크림 가게로 향하던 엄마를,

 

  나는 기억한다, 친구들과 교환일기를 썼던 날들을, 그 표지에 그려져 있던 우주 그림을, 우리의 헤어짐을 기쁘게 생각하던 우리를, 꼭 서울에서 만나자고 약속한 우리를,

 

  나는 기억한다, 내가 퀴어라는 걸 친구에게 말한 날을, 비 내린 후 축축한 공원을 걷고 있었지, 축축한 냄새가 났고, 신발이 점점 흙으로 얼룩지고 있었다,

 

  나는 기억한다, 말없이 나를 안아주던 친구를,

 

  나는 기억한다, 내가 금지된, 이상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그 공원에 갔다, 용기를 얻었지,

 

  나는 기억한다, 같은 반에 좋아하는 친구가 있다고 고백한 날을, 숨기지 않아도 되었다,

 

  나는 기억한다, 수학여행 기행문에 좋아하던 친구에 관해 썼던 것을, 그 친구와 탔던 야간 롤러코스터를, 눈을 감고 꼭 잡았던 친구의 손을,

 

  나는 기억한다, 기행문 상을 받게 되었던 날을, 그걸 많은 친구 앞에서 발표해야 했는데, 국어 선생님이 나를 지켜주었지, 아무도 내가 상을 받게 된 걸 몰랐다, 국어 선생님은 나에게 우리 둘의 비밀로 하자고 했다,

 

  나는 기억한다, 어쩌다 내 기행문을 읽게 된 친구가 나를 경멸하며 피했던 일을, 나를 금지된 인간처럼 여기던 그 친구를,

 

  나는 기억한다, 서울로 가기 전 친구네 집에서 잤던 날을, 친구가 잠들고 조용히 울었던 날을, 그 친구가 잠들기 전 했던 말을, 네가 어떤 사람이든 나는 언제나 여기에 있을 거야, 

 

  나는 기억한다, 서울에 도착했을 때를, 무언가 놔두고 왔다고 생각했지, 

 

  나는 기억한다, 답을 듣지 못할 편지를, 어딘가에 보관되어있는 나의 부산을, 다시는 만날 수 없게 된 사람과 시간을,

 

  나는 기억한다, 녹음되어 있는 부산의 소리를 숨죽여 들었던 날을, 어딘가 남겨진 부산 바다의 모래를 발견한 날을, 그 감각이 기억난다,

 

  나는 기억한다, 사랑하는 친구들과 바다에서 불꽃놀이를 하고 있다,

 

  나는 기억한다, 많이 웃었다, 

 

  나는 기억한다, 우리가 함께 있었고, 어둠 속에서 빛나고 있었다,

 

  나는 기억한다, 녹음되어 있는 부산의 소리, 파도 소리보다, 우리의 웃음소리가 더 컸고, 

 

  나는 기억한다, 내 신발에 사라지지 않는 커다란 모래 조각이 아직 있고,

 

  나는 기억한다, 부산을 미워하지 않았어,

 

  나는 기억한다, 서울에서 부산으로 가는 기차에 오른 날을,

 

  나는 기억한다, 내가 사랑하는 새로운 친구들과, 내가 미워하는 부산으로 가고 있어,

 

  나는 기억한다, 우리는 바다에서 불꽃놀이를 하려고 했지,

 

  나는 기억한다, 이제는 바다에서 불꽃놀이가 금지되었지,

 

  나는 기억한다, 바다, 불꽃, 금지,

 

  나는 기억한다, 

 

  나는 기억한다, 바다, 

 

  나는 기억한다, 미래, 바다 앞에 살고 있는, 나의 미래, 아무도 나에게 뭐라고 하지 않는, 금지, 없는, 바다, 앞, 불꽃, 놀이,

 

  나는 기억한다, 이제는 울지 않는다,

 

  나는 기억한다, 함께 부산에 왔다가, 친구가 먼저 서울로 떠났을 때, 

 

  나는 기억한다, 부산 어땠어, 좋지, 여기가 내가 사랑하는 부산이야, 외치고 싶었던 마음을, 

 

  나는 기억한다, 부산에 있는 나를,

 

  나는 기억한다, 부산에 있었던 나를,

 

  나는 기억한다, 계속 남아있는 과거의 나, 부산의 나,

 

  나는 기억한다, 부산을 미워한 게 아니야,

 

  나는 기억한다, 부산이요, 부산 정말 커서 전부 바다랑 가까운 건 아니에요, 저의 집도 바다랑 멀고요,

 

  나는 기억한다, 그래도,

 

  나는 기억한다, 부산에 제가 있었어요, 살았어요,

 

  나는 기억한다,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도 살았고요,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살았고요,

 

  나는 기억한다, 제 친구도, 보이지 않는, 이제는 만날 수 없는 친구도 있고요,

 

  나는 기억한다, 어둠 속에서, 

 

  나는 기억한다, 불꽃놀이, 파도 소리, 금지를 뚫는 웃음소리,

 

  나는 기억한다, 

 

  나는, 

 

  기억한다,

 

  나는 기억한다, 울지 않는 부산,

 

 

 * 조 브레이너드, [나는 기억한다]를 오마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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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믹스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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