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쩌구저쩌구 3] 작업고민 1, 수목  

 

2021. 04. 16(금)

 

  삶에 있어 영원한 것은 없다. 이 사실을 주기적으로 상기하게 된다. 어떤 것의 본질을 보는 일은 불가능하며 우리는 표면만을 부유하며 살아간다. 우리는 어떤 것을 지속시키기도 전에 그것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에서 끝을 맞이한다. 혹은 그것을 알지 못한 채 지나간다. 유한함은 자연스러운 삶의 특성이다.

 

  한 가지 모순적인 점은 위의 내용이 자연스러운 삶의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를 거부하거나 망각한다는 사실이다. 왜 그럴까? 3월 19일자 내 일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이상이라는 것 자체에 의문이 든다. 우연적이고 가변적인 세상 속에서 절대적인 가치를 찾아내려고 하는 것 자체가 소모적인 행위 아닌가?

 

  한 달 후의 나는 가치를 가지지 못한 삶이 얼마나 의미 있는가에 대해 고민한다. 현실의 것들이 쉽게 오고 가는 불안정한 상황에서 최선의 안정성은 이상과 가치체계에 있지 않은가, 라는 생각에 수긍한다. 가치체계를 따르게 되면 방향성이 보인다. 주변 상황들에 흔들리지 않으며 확신을 가지고 움직이게 된다. 나는 그런 명료함을 좋아한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작업을 할 때도 이러한 갈등은 지속된다. 나는 어떤 절대적인(내가 생각하는 절대적인 기준이라는 점에서 상대적이기도 하지만) 기준을 만족시키기 위해 삶의 다른 요소들을 포기하는 게 익숙하고, 번아웃 상태를 주기적으로 경험한다. 작업을 할 때 재미나 성취감을 느끼지 못한다. 작업은 자기소모적인 행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업을 지속하는 이유는 내가 작업에 대해 가지고 있는 변함 없는 믿음 때문이다. 나는 작업에 절대적인 가치를 두고 있다. 내 자아를 작품에 드러내는 일은 힘들고 예민해지는 행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마음을 준 만큼 표현된다는 점에서 동등하며, 가장 나답다고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작업은 내 삶에 있어서 가장 안정적이고 진실한 것이다. 관계나 상황이라는 불안정성에 얽매이지 않고 누군가 나를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남겨놓는' 행위이다. 삶의 유한함을 인정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무한한 가능성을 끝까지 놓지 못한다. 나는 절대적인 소통 수단을 바라본다.

 

  여기까지 생각이 다다른 뒤에는 확신을 잃었다. 21년도에 하고 있는 작업은 불완전성에 대한 이야기인데, 내가 완전성에 집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방향성을 잡기가 어려웠다.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모르게 되었다. 내가 내 인생에서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알지 못하는데, 창작된 인물에게 자아를 부여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도 들었다. 현재는 그 의문을 누른 채로 작업을 진행하는 중이다. 작품을 진행하며 답을 알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  [어쩌구저쩌구 4]는 4월 24일(토)에 업로드됩니다. 
Posted by 스파이시 만다린
:


  •   [어쩌구저쩌구 2] 4월 1일 일기, 수목  

 

  4월 1일 (목)

 

  몇 달 전 무기력함에 대해 생각했다. 무기력한 삶은 아무것도 원하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살고자 하는 욕구는 가장 원초적이고 1차적인 욕구인데 그것과 멀어진다는 것, 혹은 멀게 ‘느낀다는 것’이 신기했다. 삶의 반대 선상에 있다는 점에서 죽음과 가까운 감정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그 무력함의 중심이 되는 이유 중 하나로 아픔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우리는 언제 아픔을 느끼는가? 상처가 났을 때, 병에 걸렸을 때, 모두 죽음과 어느 정도 맥락을 같이 하고 있는 상황들이다. 그러므로 아픔은 삶의 궤도를 이탈하고 있다는 일종의 지표이다. 아픈 나는 나로서 존재하고 살아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최근에는 아픔이 생각보다 객관적인 감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정도는 상대적이지만 그 존재여부는 확실히 알 수 있다. 그것을 한 번 인식하는 순간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 나를 아프게 하는 것들을 돌아보게 되고 그것과의 상관관계를 끊어내게 된다.

  그렇게 생각하면 종종 겪는 아픔은 필요에 의한 것이라고 느껴진다. 우리는 아픔으로서 더 단단해지고 더 깊어진다. 삶으로 돌아가기 위한 과정은 아픔이다. 


  •  [어쩌구저쩌구 3]는 4월 10일(토)에 업로드됩니다. 
Posted by 스파이시 만다린
:


  •  [어쩌구저쩌구 1] 가치체계에 대한 짧은 생각, 수목  

 

  2021년 3월 19일(금) 일기

 

  최근에 한 것 중 내 마음을 가장 편안하게 만든 행동은 가치 체계를 버리는 일이다.

 

  나는 항상 사회적 이상을 내면화하며 살았다. 어떠한 기준 앞에서 나는 결핍된 존재이며, 내 안의 구멍을 채우기 위해서는 무언가에 의존해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요새는 이상이라는 것 자체에 의문이 든다. 우연적이고 가변적인 세상 속에서 절대적 가치를 찾아내려고 하는 것 자체가 소모적인 행위 아닌가? 삶은 가치의 유무 이전에 그저 존재하며, 가치란 것은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낸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나는 주관적인 기준에 내 시야를 한정시킬 필요가 없다. 세상은 넓고, 내가 알지 못하는 세상의 모습도 존재한다. 내가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나는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반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

 

  그렇게 생각하니 아무것도 밉지가 않았다. 

 

  모든 것이 서툴고 여리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나니, 서로가 서로에게 준 상처를 잊고 살아가는 것이 진정으로 자유로워지는 방법임을 알게 되었다. 인식의 범위 밖에 둠으로써 더 이상 거기에 얽매이지 않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내 가치에 대한 고민을 버렸을 때 가장 나다운 모습으로 존재하게 되었다. 포기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열등한 개념으로 이해되지만, 그렇지 않았다. 내가 유한한 존재임을 이해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일 뿐이었다. 

 

  한정된 시간동안 나는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다. 내 감정덩어리를 타인이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해체하고, 그것에 대한 실마리를 던져 누군가 나와 같은 감정을 느끼기를 바라는 것이다. 

 

  다만 이것은 우연에 기대는 일이고, 누군가와 소통하기까지의 시간이 가늠 불가하다는 불안정성에 몸을 맡기고 있기 때문에 나는 딱딱해져서는 안 된다. 흐름을 탈 수 있도록 언제나 유연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  [어쩌구저쩌구 2]는 4월 3일(토)에 업로드됩니다. 
Posted by 스파이시 만다린
:

* [스파이시 두리안]은 데킬라뮬과 믹스키트가 아닌 제 3자의 작업이 업로드되는 카테고리입니다. 


  •  스파이시 두리안 세 번째 창작자 소개   

 

@anapple_20


  •  [소개] 어쩌구저쩌구, 수목 

 


 

  •  2021년 3월 27일(토)에 [어쩌구저쩌구 1]이 업로드됩니다. 

 



[스파이시 두리안]에

자신의 창작물을 연재하고 싶다면
노트 속 잠들어 있는 창작물을 세상 바깥으로 내보내고 싶다면
꾸준히 자신의 작업을 아카이빙하고 싶다면


mail : spicymandarin@daum.net 
instagram : @spicymandarin_spicymandarin
twitter : @spicy_mandarin


언제든 여기로 연락주세요.
[스파이시 만다린]은 모두에게 열려있습니다.
저희와 이야기 나누어 보아요!

 

Posted by 스파이시 만다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