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모르는 언어를 쓰는 곳으로의 여행을 좋아한다.  혼자 커피를 마시거나 점심을 먹는 중에, 혹은 지하철을 기다리는 중에 들리는 낯선 목소리와 억양을 듣는 일은 내가 여행 중임을 매 순간 감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심심해지면, 종종 그들의 대화와 그들이 처한 상황을 내 멋대로 상상해 적어보곤 한다.

 

        A: 왜 이제야 와?

       B: 오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럼 그들에겐 평범할 순간들이 나에게만은 연극의 한 장면처럼 보이곤 한다. 그런 일상의 순간들을 극의 형식으로 엮어보고자 한다.

 

*격주 금요일 연재.

Posted by 데킬라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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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의 노래

 

눈을 뜨자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노래가 헤드셋으로 흘러나온다

분명 익숙한 목소리를 가진 자가 낮은음으로 노래하고 있다

플레이리스트를 열어 확인하자 아무 노래도 담겨 있지 않다 

그만 듣고 싶어 

 

헤드셋을 벗자

재빨리 달리는 차들의 소리

나는 오거리 중앙에 있다 

사방에는 꿈에서 본 것만 같은 건물들이 가득하다

최대한 신속하게 도망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디로 가야 하는 건지

다음 스텝의 방향을 잡을 수 없어

잠시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는데 

여러 사람이 내 어깨를 밀치며 지나간다 

사과는 하지 않는다 

 

그 순간 쿵 하고 굉음이 들려오고

수많은 차가 줄줄이 충돌하고 있다 

아무도 차 안의 사람들을 구하지 않는다

빠르게 사고 현장을 지나쳐 자신의 목적지로 간다

 

멀어지는 사람들에게

잠시만요, 외치려는데

내 전화벨 소리가 시끄럽게 들려온다 

수화기 너머의 사람이 열차는 탔는지 물어본다

노래를 부르던 사람이다

 

지금이 열차를 타기 전인지 내리고 난 후인지 모르겠어

여기가 어디지요? 묻는다

그 사람은 당신의 방이라 답한다

 

눈을 뜨자 

열차 안이고 어디쯤인지 확인하기 위해 바깥을 바라본다 

분명 이쯤이면 마을이 나타나야 하는데 

창문 밖은 온통 비석으로 가득하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수천 개의 비석에 죽어버린 여러 내 이름이 쓰여있다 

왠지 모르게 날 살리고 싶다는 마음이 그득해져

내려달라 외쳐보는데 아무도 열차에 없다 

 

그때 비상시에는 비상 망치를 사용하라는 안내방송이 나와

내 옆 망치를 들어 온 힘으로 창문을 내리친다 

유리가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나는 

달리기를 멈추지 않는 열차 바깥으로 뛰어내리는데

 

눈을 뜨자 

정말 내 방이었고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정지한 내가

그런 나를 밀치고 지나가는 내가

잘 도망치고 있는지 묻는 내가 

사고가 나 실패했다고 대답하는 내가

죽어버리고 싶다는 마음만으로 죽어버린 여럿의 내가 

둥둥 떠다니며 

낮은음으로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Posted by 믹스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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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 관람 시 주의할 점

 

  여기로 날 데리고 온 사람은 문이 닫히면 안대를 벗으세요 말한다 철문 닫히는 소리가 나 시키는 대로 한다 검정 정육면체 방이다

 

  방 중앙 키오스크가 켜져 다가간다 화면에는 당신이 죽는 순간을 상상해보세요 가 있다 곧 상상은 표현으로 바뀐다 전면 카메라가 켜져 내가 보인다 죽은 뒤가 아닌 죽고 있는 순간 장례식장이 아닌 마지막에 있게 될 장소 묘비명이 아닌 사인 옥상이 아닌 검정 정육면체 방? 숨을 참아본다

 

  여기는 옥상입니다 옥상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등 뒤에 문만 있습니다 이 건물 앞을 지나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 건물에는 스무 세대가 삽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한 발을 내디디면 꼭 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등 뒤로 날개가 생길 것 같고 그 날개를 가지고 저 멀리 있는 언덕으로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다 날개가 사라져 도중에 떨어지게 되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한 발을 내딛겠습니까? 고개를 끄덕이자 검정 정육면체 방이다 

 

  키오스크 뒤로 불빛이 새어 나온다 통로다 그 빛을 따라 통로로 들어간다 계속 걸어간다 길다

  통로 끝에 도착하니 검정 정육면체 방이다 방 중앙 커다란 케이크가 있다 

 

  여기는 당신의 방입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은 말린 라즈베리가 박힌 생크림 시폰 케이크 주위에 둘러앉아 생일 노래를 부릅니다 초가 빠르게 녹아내립니다 각자 써온 편지를 펼쳐 누구에게 편지를 썼는지 기억해내려고 합니다 누구의 생일이었지? 촛불에 비친 서로의 얼굴을 바라봅니다 사람들은 생일인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초가 빠르게 흘러내립니다 서로의 얼굴이 하나둘 사라지고 온 힘을 다해 손뼉을 칩니다 우걱우걱 케이크를 먹는 소리가 들립니다 당신이 먹고 있습니다 아무도 불을 켜지 않습니다 누군가 울고 있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당신이 울고 있습니다 아무도 불을 켜지 않습니다

 

  뒤돌아 달린다 통로를 지나 첫 번째 방 문으로 달려간다 잠겨 있다 문을 두드린다 목이 쉬도록 소리 지른다 등 뒤 키오스크가 켜진다 화면에는 누구의 죽음이었지? 가 있다 

 

  전시 관람이 끝났다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온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 열고 나간다

 

  거기는 무대입니다 여러 사람이 당신을 봅니다 프롬프트 화면에 당신이 죽는 순간을 표현해보세요 가 있습니다

  무대 중앙에 커다란 책이 거기에는 여러 사람이 죽은 방식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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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이브-라이브러리'에는 믹스키트가 저장하고 싶은 시간, 장소, 사건 등을 모읍니다.

  '세이브-라이브러리'에는 믹스키트의 10주를 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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