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이 시작되기 10분 전. 극장 문은 아직 닫혀있고, 공연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는 관객들은 로비에 모여 있다. 서 있는 사람들도 있고, 구석에 앉아있는 사람들도 있고, 화장실 앞으로 늘어선 줄도 있다. 로비 중앙에 두 사람이 서로의 허리를 감싸고 마주보고 있다. 그들 주위로 지나가는 사람들은 잔상처럼 남고, 두 사람은 가운데에 서로를 가만히 바라보며 서 있다.
A 나 너 안고 싶어.
B 갑자기?
A 응. 공연 시작하면 못 안잖아.
B 끝나고 안으면 되잖아.
A 너무 길어.
B 알았어. 잠깐만.
B는 스웨터를 벗는다. 반팔이 드러난다.
A 갑자기?
B 좀 덥네. 사람이 많아서 그런가.
A 더 더워질걸.
A가 B를 꽉 껴안는다. 서로의 머리를 서로의 어깨에 기댄다. 한참 말없이 머물러 있다. 두 사람이 얼굴을 마주본다. 미소 짓고 가볍게 정면으로 입을 맞춘다.
B 그러게. 덥다.
극장 로비 한쪽에 마련된 바에 C와 D가 서 있다. 두 사람은 메뉴판을 보고 있다.
C 뭐 마실래?
D 다 너무 비싸. 다 싸구려 와인일텐데.
C 저 샴페인 나쁘지 않아.
D 아니, 오늘은 샤도네이야.
C 그래. 그럼 내가 저 샴페인 주문할게. 맛이나 봐.
D 좋아!
C가 주문을 하고 결제를 한다. 잔을 받아든 두 사람이 로비 창가 쪽으로 가서 기대 선다. D가 먼저 한 모금 마신다.
D 음, 생각보다 별로야.
C 내 거 마셔볼래?
D 응.
D가 C의 잔을 들고 맛을 본다. 눈이 커다래진다.
C 맛있어?
D 완전. 네 말 들을걸.
C 너 다 마셔. 내가 이거 마실게.
D 정말? 네가 주문했잖아.
C 됐어. 나중에 또 주문하지 뭐.
D 고마워.
D는 홀짝 홀짝 잔을 빨리 비운다. C는 그런 D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며 천천히 와인을 마시기 시작한다. 두 사람이 잔을 비우고, C는 잔을 바에 돌려주고 오겠다며 D로부터 잔을 받아든다. 그때 두 사람의 손가락이 잠시 얽힌다.
극장 문이 열린다. A와 B는 그제야 포옹을 풀고 극장으로 들어선다. D는 바에서 돌아오는 C에게 티켓을 건넨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얽힌다.
+여행을 다닐 때 극장을 자주 갔습니다. 왜인지 혼자 온 사람은 거의 항상 저밖에 없더군요.
봄, 토요일 낮의 결혼식장. 젊은 사람들이 많다. 가 는 신부 대기실에 앉아있다. 가 의 친구들이 오며가며 끊임없이 가와 인사를 주고받는다. 나 가 들어온다. 가 와 함께 있던 친구들은 그녀를 모르는 눈치이다. 하지만 가 는 단번에 나 를 알아보고, 다른 친구들과의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다. 곧 가 와 나, 둘만 남는다.
가 왔구나!
나 응, 덕분에. 청첩장 보내줘서 고마워.
가 그럼, 너한텐 당연히 보내야지. 직접 못 줘서 미안해. 동아리 친구들한테는 단톡방으로 청첩장을 보냈는데 거기에 네가 없더라구. 그래도 잘 전달받았다니 다행이야.
나 그러게. 내가 괜히 번거롭게 한 것 같네.
가 아냐, 그런 거. 전혀. 사실 너 나가고 단톡도 그냥 흐지부지 되고. 그 전부터도 그랬긴 했지만. (사이) 다들 바쁘잖아.
나 그렇지. (사이) 오늘 다들 왔으려나? 아직 아무도 못 봐서. 궁금하네, 다들 어떻게 지내는지.
가 맞아, 나도 진짜 오랜만에 보는 거다.
나 안 그래도 너한테 그전부터 계속 연락하고 싶었어. 동아리 여자애들은 진짜 언제 한 번 만나고 싶었거든.
가 뭐야, 그럼 연락하지 그랬어. 나도 너 어떻게 지내나 궁금했는데. 가끔 주변 친구들한테 물어보고 그랬어.
나 아 정말? 그랬구나. 연락을 하고 싶었는데 너무 한참을 소식 없이 지냈잖아. 갑자기 얼굴 보자고 얘기 꺼내는 게 좀, 그렇더라고.
가 맞아. 쉬운 일은 아니지.
나 그래도 너 덕분에 이런 기회 생겨서 정말 좋다. 그것도 이런 좋은 일로.
가 식 끝나고 다같이 뒷풀이라도 하면 좋을텐데. 그런 거 있잖아, 외국처럼 막 밤까지 파티하고 그런 거.
나 그러게. 근데 일반 예식장에선 그런 것까지 안 해주지?
가 뭐 비용 문제도 있고, 직접 준비하려면 시간도 돈도 많이 들고. 그리고 사정 때문에 결혼식 끝나고 바로 신혼 여행을 가야 돼서, 어차피 계획할 수도 없었어.
나 아, 너희 바로 신혼여행 가는구나. 요즘은 많이들 미루던데. (짧은 사이) 낭만적이다.
가 나는 미루고 싶었지. 차라리 집에서 쉬는 편이 더 좋은데, 신혼여행은 결혼식 당일에 꼭 가고 싶다고 하는 통에. 회사 휴가도 이미 받았다고 하고.
가 가 말을 생략하며 눈을 찡긋한다. 걔가 그렇다니까.
나 피곤하긴 하겠구나. 그래도 허니문은 자주 있는 게 아니니까, 잘 놀고 와.
가 그치? 허니문은 한번 뿐이니까.
나 는 허니문이 한 번 뿐이라는 보장은 없잖아, 라는 말을 삼키며 싱긋 웃는다.
나 그럼, 다른 친구들도 만나야 할 테니까, 나는 밖에 나가 있을게.
가 그래 그래. 아, 나가기 전에 같이 사진이나 찍자. (옆자리를 손을 짚으며) 여기 앉아.
나 가 의자에 앉고 두 사람은 다정하게 사진을 찍는다.
나 (신부 대기실을 나가면서) 이따 신부 입장 잘 해!
가 (애정이 가득한 목소리로) 고마워.
나 는 신부 대기실 입구 근처에 있는 다 에게 다가간다. 다 는 눈앞에 등장한 나 를 보고 잠시 당황하지만 이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보인다.
나 오랜만이다?
다 어, 너도 왔구나.
나 응, 청첩장 받았어.
다 어, 들었어. 빨리 왔네, 식은 아직 한참인데.
나 어쩌다 보니 버스를 좀 빨리 타서. (사이) 축하해. 저렇게 좋은 사람이랑 결혼도 하고. 너 복 받았다 야.
다 그치.
나 네가 이렇게 결혼을 빨리 할 줄···, 알았어.
다 아, 그래?
나 응, 너 맨날 '가장' 되고 싶어 했잖아.
다 뭐, 6년 사귀었음 결혼할 때도 됐잖아.
나 결혼할 때가 뭐 정해져 있나. 만난 햇수로는 6년이어도 너네 나이로 보면 아직 한창인데.
다 뭐 한창 땐 결혼하면 안 되냐?
나 아니? 그냥 신기해서 그래. 내 또래 중엔 너네가 제일 먼저 결혼하는 커플이거든.
다 네 주변에선 그런가보지.
나 아, 뭐, 그럴 수도 있고.
짧은 사이. 그때 누군가 다 에게 다가와 축하 인사를 건넨다. 다 는 양손으로 악수를 하며 허리를 연신 굽히며 감사 인사를 한다. 나 는 다 가 인사를 마칠 때까지 옆에서 기다린다. 다 는 불편한 기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