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의 노래

 

눈을 뜨자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노래가 헤드셋으로 흘러나온다

분명 익숙한 목소리를 가진 자가 낮은음으로 노래하고 있다

플레이리스트를 열어 확인하자 아무 노래도 담겨 있지 않다 

그만 듣고 싶어 

 

헤드셋을 벗자

재빨리 달리는 차들의 소리

나는 오거리 중앙에 있다 

사방에는 꿈에서 본 것만 같은 건물들이 가득하다

최대한 신속하게 도망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디로 가야 하는 건지

다음 스텝의 방향을 잡을 수 없어

잠시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는데 

여러 사람이 내 어깨를 밀치며 지나간다 

사과는 하지 않는다 

 

그 순간 쿵 하고 굉음이 들려오고

수많은 차가 줄줄이 충돌하고 있다 

아무도 차 안의 사람들을 구하지 않는다

빠르게 사고 현장을 지나쳐 자신의 목적지로 간다

 

멀어지는 사람들에게

잠시만요, 외치려는데

내 전화벨 소리가 시끄럽게 들려온다 

수화기 너머의 사람이 열차는 탔는지 물어본다

노래를 부르던 사람이다

 

지금이 열차를 타기 전인지 내리고 난 후인지 모르겠어

여기가 어디지요? 묻는다

그 사람은 당신의 방이라 답한다

 

눈을 뜨자 

열차 안이고 어디쯤인지 확인하기 위해 바깥을 바라본다 

분명 이쯤이면 마을이 나타나야 하는데 

창문 밖은 온통 비석으로 가득하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수천 개의 비석에 죽어버린 여러 내 이름이 쓰여있다 

왠지 모르게 날 살리고 싶다는 마음이 그득해져

내려달라 외쳐보는데 아무도 열차에 없다 

 

그때 비상시에는 비상 망치를 사용하라는 안내방송이 나와

내 옆 망치를 들어 온 힘으로 창문을 내리친다 

유리가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나는 

달리기를 멈추지 않는 열차 바깥으로 뛰어내리는데

 

눈을 뜨자 

정말 내 방이었고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정지한 내가

그런 나를 밀치고 지나가는 내가

잘 도망치고 있는지 묻는 내가 

사고가 나 실패했다고 대답하는 내가

죽어버리고 싶다는 마음만으로 죽어버린 여럿의 내가 

둥둥 떠다니며 

낮은음으로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Posted by 믹스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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