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곱 번째 주제 : 골목길 

  [꿈속 골목길 꿈속], 믹스키트

 

*

 

  D는 어떤 골목길이 나오는 꿈을 꿨다고 했다. D는 그 꿈이 너무 생생해 꼭 실제로 거기에 가본 것만 같다고 말했다. 내가 "어릴 때 가본 거 아닐까?"라고 묻자, D는 절대 그럴 수 없다고 했다. D는 꿈속 골목길이 여기의 골목길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고 했다. 확실히 한국의 골목길은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또한 단 한 번도 외국에 가본 적 없는 자신이 꿈속 골목길도 가본 적 없는 게 당연하지 않겠냐고 주장했다.

  나는 D의 단단한 확신을 깨기 위해 "아마 영화나 드라마에서 그 골목길을 봤을 거야."라는 말로 받아친다. 하지만 D는 고개를 아주 크게 젓는다. 그러고는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곳이었어."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나는 D의 고집을 꺾고 싶다. 하지만 D의 꿈속 골목길은 그 무엇보다 견고해 쉽지 않다. D를 만나기 전 이러한 상황을 예상했는데, 이 정도일 줄은 정말 몰랐다. 지금 내 마음속에는 말려야 한다는 마음과 포기하고 싶다는 마음이 충돌하고 있다.

 

  며칠 전, D는 꿈속에서 그 골목길에 갔다 온 후 나에게 전화를 했다. 전화 너머의 D는 엄청나게 흥분한 상태였다. D는 그 골목길에 대해 마구 설명하기 시작했다. 

 

  D의 말에 따르면 골목길은 이러한 모습이다. 골목길 양옆에는 흰 눈이 가득 쌓여있다. 누가 치워둔 눈은 D의 허리 높이 정도다. 지금은 낮이고 오른쪽에는 자그마한 서점과 유리공예를 하는 가게가 있다. 왼쪽에는 바람을 주의하라는 표지판이 있고 그 뒤에 마당이 딸린 이층집이 있다. 그 집 창문에는 엑스자로 녹색 테이프가 붙여져 있다. 계속해서 눈이 내리고 있다. 태양이 강하게 내리쫴 눈이 부시다. 바닥에 쌓인 눈이 반짝반짝 빛나고, D는 눈을 찌푸리고 있다. D는 별로 춥지 않다고 느낀다. 날이 맑아서 그런 거라 생각한다. D는 골목길 끝을 바라본다. 바다다. 골목길을 쭉 따라 걸어가면 바다가 나온다. 파도가 넘실대는 소리가 들려온다. 갈매기가 우는 소리도 함께다. D는 바다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골목길을 따라 쭉 걷기 시작한다. 눈을 밟는 소리가 깨끗하다. D는 지금, 이 순간이 정말 편안하다고 느낀다. 아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는 이곳에서 홀로 바다로 간다는 사실에 들뜬다. D는 계속 걷는다. 바다에 닿을 때까지. 골목길 끝으로 갈수록 바람이 거세진다. D의 코트와 머리카락이 심하게 흩날리고 있다.

 

  D는 꿈속 골목길에 대한 이야기를 끝마치고 나에게 말했다.

 

  "꿈속 골목길에 꼭 갈 거야. 너무 가고 싶어. 날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그 골목길을 찾고 싶어. 눈을 밟으면서 바다로 향하고 싶어. 말이 통하지 않는 나라의 골목길에서 혼자가 되고 싶어."

 

  나는 "어디인지도 모르는 그 골목길을 찾을 수 있을까?"라고 물었다. D가 떠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D가 떠난다면 난 견딜 수 없을 것이다. D가 나에게 꿈속 골목길과 같은 사람이니까. 

 

  그러자 D는 

 

  "꼭 찾아낼 거야.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리든."이라고 말하고 정말 떠났다.

 

**

 

  D의 편지를 받은 날이었다. 편지에는 자신이 대만과 필리핀을 거쳐 지금 일본에 왔다고 적혀 있었다. D는 그 꿈속에서 간 골목길을 일본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일본의 골목길이 자신의 꿈속 골목길과 굉장히 비슷하게 생겼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D가 빨리 그 골목길을 찾고 돌아오길 바랐다. D가 없는 여기에서의 나날들이 무거웠기 때문이다. D가 없는 내 일상은 끝이 없는 골목길을 걷는 것과 같다. 아무리 걸어도 목적지에 닿지 않는 느낌. 내 안에 꽉 찬 이야기를 쏟아낼 사람이 없기 때문일까. 난 계속 헤매고 있다. 나도 모르는 골목길 사이 사이를.

  D의 편지는 골목길을 찾는 이야기로 시작해 나의 안부를 묻는 거로 끝이 났다. 그리고 편지 봉투 안에는 대만과 필리핀의 골목길 사진이 들어 있었다. 사진 속 D는 두 팔로 엑스자를 만들며 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사진 뒤에는 "빨리 꿈속 골목길을 찾아 너에게도 보여주고 싶어."라고 적혀있었다.

  나는 D의 편지를 읽으며 집 앞 골목길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밤이었다. 갑자기 어디선가 "얌마."하는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골목길에 아무도 없었으므로 나를 부르는 것 같아 조심스럽게 주위를 훑어보았다. 주위 집들의 불이 전부 꺼져 있는 상태였다. 누가 나를 불렀는지 찾을 수 없었다. 그때 내 앞에 자그마한 돌멩이들이 우두두 떨어졌다.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나는 재빨리 담뱃불을 끄고 집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때 다시 한번 돌멩이들이 우두두 떨어졌다. 어디에서 날아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나는 누가 돌멩이를 던지는지 찾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주위를 둘러보며 누구인지 찾는 나를 바라보며 남자가 비웃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걸어 내 집으로 들어갔다. 그때 또 한번 돌멩이들이 떨어졌다. 나는 도어락을 빠르게 누르고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왔다. 잠금장치 세 개를 전부 채우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펑펑 울었다. 심장의 속도가 진정되지 않았다.

  D가 보고 싶다. 하지만 D는 여기 없다. 나는 조금 전에 일어난 일이 무엇인지 생각한다. '꿈이었나? 내가 잘못 들은 건가? 내가 잘못 본 건가?'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나를 의심하고 있다. 우리 집이 안전하지 않은 공간이라는 사실에 두려워진다. 나의 집, 나의 집 앞 골목길에서 도망치고 싶다. 

 

***

 

  D는 꿈속 골목길에 도착했을까? 나의 골목길을 두고. 왜 D는 나를 두고 혼자가 되는 선택을 한 걸까. 아니, 난 왜 D에게 화가 난 거지. D에게 화를 내면 안 된다. 화를 내려면 돌멩이를 던진 남자에게 내야 한다.

  D는 그 골목길에서 눈을 맞으며 바다로 향하고 있을까? 혼자가 되어버린 기분을 만끽하고 있을까? 난 더는 혼자 이 집에서, 이 집 앞 골목길에서 살 수 없을 거다. 꿈과 같은 순간이 계속 머릿속을 돌아다닌다. 돌멩이가 내 앞에 계속 떨어지는 것만 같다. 우두두, 우두두. 소리가 계속 들려오고, 얌마, 얌마, 나를 찾는 남자의 목소리가 울리고. D를 만나고 싶다. D와 D의 골목길을 찾아 떠나고 싶다. D와 함께 그 골목길을 걷고 싶다. 눈이 가득 쌓인 골목길을 걸으며 나의 골목길에 관해, 내가 공포에 떨었던 순간에 관해 마구 쏟아내고 싶다. 골목길을 헤매는 걸 그만두고 싶다. D는 자신을 찾아온 나를 반겨줄까? D는 나의 골목길을 받아줄까? 모르겠다. 그런데 D를 보고 싶다. D의 옆에 있고 싶다. D의 골목길에 가고 싶다. 나의 골목길을 버리고.

 

****

 

  여기구나. 내 꿈속 골목길. 너도 함께 왔으면 좋았을 텐데. 

  D는 두 팔을 들어 동그라미를 만들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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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킬라뮬은 [꿈]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다음 글을 씁니다. 
Posted by 믹스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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