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쓰기 4] 세상의 모든 롱디들에게
스파이시 만다린/첫 번째 [이어쓰기] (끝) 2021. 2. 17. 17: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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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주제 : 포옹
[세상의 모든 롱디들에게], 데킬라뮬
오십 센티미터 이내의 가까운 거리에서 3초 이상 서로를 바라보고 있으면, 각자의 심장이 서로를 향해 신호를 보낸다고 한다. 그렇다면 거리가 0으로 좁혀지는 포옹의 순간엔 우리의 심장과 심장이 얼마나 강력히 반응할까. 그리고 그 순간을 오백 시간 넘게 공유한 우리의 심장은, 서로를 얼마나 오래 기억하고 간직할 수 있을까.
프라하 캄파 섬에서였다. 푸른 강을 뒤로 하고 서로를 꼭 껴안고 있던 두 사람을 본 건. 여름날의 눈부신 풍경보다 그 장면이 기억에 더 선명히 새겨진 이유는, 그들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슬픈 감정 때문이었다. 그 감정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아마도 서로의 어깨에 파묻은 얼굴에서, 옷가지를 꼭 쥐고 있는 손가락 마디에서, 간간히 들썩거리는 어깨에서. 어쩌면 긴 이별을 앞두고 있는 사람들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다.
그래서였나 보다. 너를 뒤로하고 공항 게이트를 통과해야 했던 순간에 그 두 사람이 떠올랐던 것이. 게이트는 고맙게도 닫히지 않았고 그 열린 문 사이로 네가 보일 때마다 너는 나를 발견하고 계속 손을 흔들었다. 그게 반가웠지만 내심 네가 인사를 그만두고 돌아가길 바랐다. 네가 먼저 나를 등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를 탄다면 내가 조금이라도 더 마음 편히 떠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이기심 때문에.
탑승 시간이 촉박하게 남아있었고, 서둘러 보안 검사를 마치려고 허둥대는 나에게 직원이 주의를 주려는 듯 뭐라고 얘기했는데,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너를 생각하지 않고 울지 않으려는 데 나의 온 신경이 가 있었기 때문에. 게이트를 통과하기 전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요란한 작별 인사는 이미 겪었으니까, 그걸 다시 한번 혼자서 반복하고 싶지는 않았다.
예상하지 못했던 작별은 아니었다. 나는 이곳에 올 때부터 내가 언제 떠나야 하는지 알고 있었고, 그때까지 남은 시간이 마냥 길게만 느껴지다가도 우리가 종종 바보 같은 농담을 나누고 깔깔거릴 때, 네가 신이 나서 엉뚱한 춤을 출 때, 잠들기 전 침대에서 서로에게 몸을 기대고 책을 읽거나, 인기 있는 시리즈를 볼 때, 이 시간이 언젠가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중단되어 버린다는 사실이 가끔 참을 수 없이 무섭게 다가왔다. 그 길 잃은 감정은 부지런히도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고 내 힘으론 그걸 도저히 어찌할 수 없다고 느낄 때, 너의 품은 언제나 그 감정을 꼼짝 못하게 만들었다. 출국을 며칠 앞두고 있던 그 날에도.
너와 나란히 누워 낮잠을 자다 눈을 떴을 때, 이미 하늘은 어둑해져 있었고, 너는 여전히 세상 모르고 잠들어 있었다. 가끔, 우리 중 누군가는 누군가를 남겨 두고 떠나야 한다는 게, 우리의 도시가 이토록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게, 불완전함으로 가득 차 있는 세상 속에서 우리의 만남은 파도 앞의 모래성처럼 늘 위태롭게 서 있다는 게, 원망스러워진다. 작별의 순간을 감각 해야 하는 이런 순간에는 더더욱.
미움은 다시 슬픔이 되어 흘렀고, 나의 훌쩍임을 들은 너는 잠에서 깨었다. 무슨 일이냐고, 아직 잠이 덜 깬 상태로 묻는 너의 물음에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할 수 있는 건 너를 그냥 바라보는 거였는데, 질문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는 너의 눈빛을 보았을 때 너 역시 이미 알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렇게 한참 눈과 눈을 맞추고 있다가,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끌어안았다. 숨이 더워지도록 깊숙이 파고든 너의 체온 덕에 울음도 미움도 그칠 수 있었다.
네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릴거야, 우린 다시 만날거야, 같은 너의 약속의 마무리는 언제나 따뜻한 포옹이었고, 그 맺음은 말보다 더 확실한 안정을 주었다. 그런 밤과 낮 때문인 것 같다. 비행을 마치고 도착한 공항에서, 금세 눈물을 닦고 씩씩해질 수 있었던 건.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다는 것, 한때는 두렵게 다가왔던 그 사실이 이제는 오히려 안정을 준다는 것에 웃음이 나기도 했다. 우리가 함께 보냈던 시간이 그대로 그쳐버린 게 아니니까, 시간은 계속해서 흐르고 있고 그 시간의 연장선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다시 비행기에 오를 테니까.
그때까진 우리의 심장이 계속해서 서로를 기억하고 그리워해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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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제는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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믹스키트는 [만남]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다음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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