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사진] 장미의 이름은 장미
스파이시 바나나/[오늘의 레시피] 데킬라뮬 (끝) 2021. 6. 19. 03:50 |
1. 요즘 자꾸 여름에 대한 글을 쓰게 된다. 저녁 여덟시가 넘어서야 찾아오는 해 질 녘과 한낮의 태양 아래 반짝거리며 광채를 내는 살결과 늦은 밤이 되면 창문으로 넘어오는 산뜻한 공기. 그리고 더 없이 아름다웠던 지난 여름의 추억들을 떠올리다보면 올 여름에 다가올 일들과 만날 사람들과 함께 쌓을 기억들에 대한 기대들이 마음 속을 붕붕 날아다닌다.
2. 여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꽃은 장미이다. 초여름에 더 가까운 시기에 피는 꽃이라 그런 걸까 아니면 장미의 강렬한 색이 여름을 닮아서일까. 장미는 여름의 꽃이라는 생각을 나 혼자만 하고 있지는 않는 것 같다. 이번 글의 제목은 은희경 작가의 단편 <장미의 이름은 장미>에서 빌려왔다. 사실 소설 안에서 이 제목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유명한 대목, 장미가 그 이름을 바꾸어도 여전히 장미라고 하는 부분 때문에 지어진 것이지만, 공교롭게도 소설의 배경 역시 뉴욕의 뜨거운 여름이다. 어느 계절에 읽어도 좋을 소설이다. 문학동네 2020년 가을호에 실려있다.
3. 어느 공원에서, 장미 나무들이 나란히 심겨져 있고 그 아래 푯말이 하나씩 박혀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누군가의 이름과 날짜와 말들이 적혀 있었는데, 어떤 것은 감사와 사랑의 인사, 어떤 것은 영원히 기억하겠다는 다짐이었다. 시에서 기념 혹은 애도를 위해 장미 묘목을 하나씩 분양하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그걸 발견하고는 의아했다. 축하하기 위함이거나 추모하기 위함이면 보통 잎이 늘 푸르른 나무를 심지 않나? 장미가 활짝 피어있다면 아름답겠지만 점점 누렇고 시들해져 고개가 바닥으로 떨구어진다면 그 모습이 너무 쓸쓸해보이지 않을까 싶었다. 마침 그때는 장미가 지는 시기였고, 그럼에도 공원 위 하늘은 눈이 아플 정도로 파랗고 눈부셨다. 장미 꽃잎은 떨어지고 있지만 여름은 아직 한창이었다. 그때 알았다. 지는 벚꽃이 봄의 완연한 시작을 알리는 것처럼, 시드는 장미 역시 여름의 끝은 아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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