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여름, 비엔나를 여행할 때였다. 에어비앤비 호스트, 그리고 비엔나를 함께 여행하던 친구와 도나우 운하에 위치한 도심 해변에 갔었다. 흥겨운 음악과 선베드, 모래사장 한가운데 위치한 조그마한 바에서는 사방에서 밀려오는 주문을 받아 맥주병을 따거나 칵테일을 만드는 손길이 분주했다. 무얼 마실까 고민하고 있자 호스트가 친구에겐 맥주를, 나에겐 후고Hugo를 추천해주었는데, 추천하면서 오스트리아에 왔으니 이곳의 음료인 후고를 마셔보라고 했던 게 기억난다.

  그리고 작년, 다시 비엔나로 돌아가 식당에서 일을 시작했다. 여름이 한창일 때 야외 좌석은 늘 만석이었고, 후고 주문은 그에 비례하여 늘어났다. 누군가 처음으로 후고를 주문했을 때는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이다, 라는 생각 뿐이었는데 나중에서야 그 여름날에 내가 마셨던 음료가 이것이었다는 것을 기억했다. 첫 모금에 그리 인상적인 술은 아니지만, 싱그러운 민트 잎과 큼직한 얼음 조각들, 땀을 흘리는 둥그런 유리잔만큼 여름의 태양 아래에서 이보다 더 상큼해 보이는 조합은 없을 것이다. 또, 술에 탄산 등을 섞어 알코올이 그렇게 세게 느껴지지 않아 무더운 여름의 낮에 선택하기 부담 없는 음료인 것 같다.


  다른 유럽 지역의 바나 레스토랑 메뉴판에서 후고를 찾을 수 있는 지는 모르겠다. 이 술이 탄생한 건 오스트리아 남부의 남티롤 지역이다. 다른 오스트리아 지역은 물론이고 인접한 지역인 스위스나 독일에까지 음료가 전파되었다고 한다. (나에게 오스트리아에 왔으니 후고를 마셔보라고 했던 호스트의 말이 나름 이유가 있는 말이었다.) 원래는 프로세코*를 베이스로 하는 술이지만 많은 식당에서는 좀 더 저렴하게 화이트 와인에 소다를 섞어 프로세코를 대체하기도 한다(내가 일했던 식당도 그중 하나였다).

  재료만 있다면 만드는 방법은 상당히 간단하다. 후고에서 가장 핵심은 프로세코(혹은 소다와 섞은 화이트와인**)과 홀룬더Holunder 시럽. 홀룬더는 영어로는 elderflowr라고 하는데, 인터넷에 엘더플라워 시럽이라고 치면 구매처를 쉽게 찾을 수 있다. 홀룬더 시럽은 약간 달달하면서 동시에 씁쓸하고도 밍밍한, -말로 표현하기 약간은 복잡한- 맛을 낸다. 독일어권에서는 거의 모든 식당에서 홀룬더 시럽을 섞은 소다나 물을 주문할 수 있을 정도로 흔하다. 그냥 탄산수나 물에 홍초나 매실 진액처럼 타 마셔도 되고 이렇게 화이트 와인과 함께 섞어 후고를 제조해 마셔도 되기에 활용도는 높다. 

  남은 재료는 민트 잎과 라임 조각, 얼음, 그리고 탄산수(만일 프로세코가 아닌 화이트와인과 탄산수를 섞은 것, 혹은 스파클링 와인을 쓴다면 생략해도 된다). 유리잔에 240ml 정도의 프로세코를 채우고, 15ml 정도(그러니까 홀짝홀짝 두어 번 정도)의 엘더플라워 시럽을 더한다. 다음, 탄산수를 10-20ml 정도로 살짝 부어준 후, 라임을 두세 조각 정도 넣고 간단히 섞어준다. 마지막으로 얼음 큐브를 한 스쿱 부어준 뒤 잎이 붙어있는 민트 줄기를 푹 담가 마무리하면 끝. 엘더플라워 시럽이나 생 라임 같은 구하기 조금 까다로울 수 있는 재료가 포함되어 있지만, 지치는 여름날에 여유로운 휴식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줄 수 있는 음료가 아닐까 생각한다. 

 

 *프로세코는 이탈리아의 백포도주 종류로 탄산이 함유된 와인이다. 

 **프로세코가 없다면 다른 스파클링 와인을 써도 되는데, 일반 화이트와인만 있다면 와인과 탄산수를 1대 1의 비율로 섞어주자. 이때 화이트 와인은 가급적 단 맛이 적거나 없는, 드라이한 와인이 좋다. 

 

  레시피가 너무 간단하기에 하나만 소개하기 아쉬워, 후고만큼 많이 만들었던 여름철 음료 하나를 더 소개하겠다. 아페롤Aperol을 넣어 만든 탄산 아페롤Aperol gespritzt. 빨간 아페롤의 색깔은 유혹적으로 보이면서도 나에겐 기침이 나올 때 먹는 시럽처럼 생겼다는 인상을 주었는데, 그 이미지 때문인지 맛도 어쩐지 술보단 약 맛에 가깝다는 생각을 종종 하곤 한다(이건 어디나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다).

  후고와 마찬가지로 베이스는 프로세코이지만 역시 화이트와인과 탄산수 섞은 것을 사용해도 된다. 6대 4의 비율로 프로세코와 아페롤을 섞어 준 뒤, 아페롤 비율 절반의 양만큼 탄산수를 부어준 뒤 얼음 큐브와 오렌지 한 조각을 넣어주면 끝! (레시피 상 정확한 리터로는, 60ml의 프로세코, 40ml의 아페롤, 그리고 20ml의 탄산수이지만 비율에만 유의해 마시고 싶은 양만큼 제조하도록 하자) 오렌지 조각은 필수적이라기보단 데코레이션의 의미가 더 강하니 굳이 넣어줄 필요는 없겠다. 만일 사용한다면 껍질을 벗기지 않은 채로 넣기를 권한다. (껍질의 향이 강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미적인 부분에서도 벌거벗은 오렌지가 술잔 안에 들어가 있으면... 안 넣으니만 못할 것 같다)

 

  푸릇푸릇한 후고와 태양의 붉은 강렬함을 담은 탄산 아페롤, 이 둘의 조합을 생각하니 여름 한낮의 태양이 오히려 기다려진다. 

Posted by 데킬라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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