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지막 작업 노트] 이어서 계속 

 

  첫 번째 스파이시 만다린 프로젝트 [이어쓰기]가 막을 내렸다.

 

  처음 [이어쓰기]를 시작했을 때를 잊지 못한다. 우리는 두려웠다. 매주 예상할 수 없는 주제를 기다려야 했고, 그것을 가지고 글을 써야 했기 때문이다. 매주 자신의 일상에 끼어드는 어떠한 세상과 마주하는 일은 우리를 막막하게 만들었다. 정말로 [이어쓰기]는 우리에게 도전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계속

  10주간 번갈아 가며 글을 썼다.

  다음 타자를 위한 주제를 자신의 글 속에서 열심히 찾았다.

  그것을 꼼꼼하게 포장해 소중히 선물했다.

  각자 선물 받은 주제로 작지만, 힘이 센 세상을 만들어냈다.

  그래서 총 10개의 세상이 탄생했다. 

 

  우리는

  서로의 주제를 아꼈다. 

  서로의 시간을 아꼈다.

  서로의 공간을 아꼈다.

  서로의 사람을 아꼈다.

  서로의 마음을 아꼈다.

  서로의 세상을 아꼈다. 

  서로가 서로를 아꼈다. 

 

  그랬기에

  그 여러 개의 세상은 서로의 손을 꽉 잡고 있었다.

  모두 연결되어있었다.

 

  이제 연결된 우리는 [이어쓰기]가 두렵지 않다. 일상의 불확실과 마주하는 건 여전히 무섭지만, 그럼에도 견딜 수 있는 힘이 생겼다. [이어쓰기]가 끝나도 우리는 이어서 계속 쓸 것이다. 새로운 세상과 만날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자신이 선물한 주제를 가지고 [이어쓰기]의 소감을 작성해보기로 했다. 

 


  • 이어쓰기 리스트 [괄호 안은 주제]
  1. 스파이시 만다린 타운, 믹스키트 [스파이시 만다린]
  2. 도망치는 골목에서, 데킬라뮬 [도망자]
  3. 해 질 녘, 에서, 믹스키트 [해 질 녘]
  4. 세상의 모든 롱디들에게, 데킬라뮬 [포옹]
  5. 거기 있(었)다, 믹스키트 [만남]
  6. 동네친구, 데킬라뮬 [동네]
  7. 꿈속 골목길 꿈속, 믹스키트 [골목길]
  8. 한여름 밤의 꿈, 데킬라뮬 [꿈]
  9. 몇 개의 나, 믹스키트 [처음]
  10. 소우주, 데킬라뮬 [반복]

 

  데킬라뮬은 [스파이시 만다린] / [해 질 녘] / [만남] / [골목길] / [처음] 으로,

  믹스키트는 [도망자] / [포옹] / [동네] / [꿈] / [반복] 으로.

 


 

*

 

데킬라뮬

[스파이시 만다린] / [해 질 녘] / [만남] / [골목길] / [처음]

 

 

1.

  우리 같이 뭔가를 해 보는 거야,

  몇 해를 그렇게 기약 없이 보내다 [처음]으로 블로그 기획을 제안받았을 때,

  마치 선물을 받은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무언가를 계속 해 볼 수 있다는 것보다도, 그걸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나에겐 더 중요한 일이었던 것 같다. 좋은 동료와, 독자들과 함께. 혼자였다면 애초에 시작하지 못했을 것 같다. 책임이 따르는 일임에도 마음이 무겁지만은 않았다. 기대가 풍선처럼 부풀어 마음을 둥실둥실 떠다니게 만들었다.

 

 2.

  작년 한 해 나는 낯선 [골목길]에 서 있었다.

  그 골목길을 통과하고 마주할 세상은 이전과는 분명 달라질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 세상을 빨리 마주하고 싶은 설렘과 함께, 그 현실을 잘 견딜 수 있을지 걱정되는 마음도 있었다.

  잠 못 드는 밤들을 통과하고, 불안한 낮을 지나 골목의 끝을 지날 때, 블로그를 위한 첫 글을 썼다.

  쓰고, 읽고, 생각하고를 반복하다보니 어느새 몇 주가 흐르고, 몇 달이 흘렀다.  새로운 리듬에 맞춰 가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3.

  나는 많은 경우에 [해 질 녘]의 시간을 싫어한다. 나의 하루가 얼마 안 남았다는 재촉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오늘 하루를 얼마나 잘 보냈는지 다그쳐 묻는 것같이 보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종종 어둑해지는 시간까지 글에 대한 아무런 실마리도 얻지 못할 때가 있었다. 가장 피하고 싶은 [만남]. 도망은 있을 수 없는 선택지였고, 어떻게든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압박이 주는 감각이 싫지 않았다. 그 감각을 온전하게 견뎌내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그 시간이 쌓여서 완성된 글들은 어설프고, 부끄럽고, 종종은 숨기고 싶었다. 그럼에도 그 이야기들을 꺼낼 수 있었던 건 언제나 그 세상을 기꺼이 들여다봐주는 누군가가 있었기 때문. 무언가를 발견해주고, 이해해주고, 괜찮다고 얘기해주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

 

 4.

  그렇게 완성된 우리의 [스파이시 만다린] 타운.

 

 

*

 

믹스키트

[도망자] / [포옹] / [동네] / [꿈] / [반복]

 

 

  나의 삶이 몇 번이든 [반복]되길 바라는 순간이 많다. 나는 매일 생각한다. 몇 번의 삶을 살 수만 있다면, 언제든 우울한 나를 버리고, 우울하지 않은 새로운 나로 몇 번이든 살아갈 것이라고. 왜냐하면 매일 아침 일어나면 내 눈앞에 죽음이 있고, 죽음과 싸움을 준비하는 시간이 하루 중 가장 길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바람은 이루어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래서 매일 괴로웠고, 삶을 포기하고 싶었다. 가끔 이 지구가 폭발해버리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마치 [도망자]가 된 것만 같았다. 매일 우울이라는 상대에게서 도망치는 도망자. 하지만 완전히 도망쳐 사라지는 건 생각보다 어려웠다. 언제나 나를 가로막는 막다른 길이 있었고, 그 앞에서 주저앉기 일쑤였다. 거기에는 우울이 있었고, 우울은 나를 다른 방향으로 가지 못하도록 막고 있었다. 누군가 나를 일으켜 세워주길 바랐다. 함께 도망가주길 바랐다.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길 바랐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 생각과 마음을 [이어쓰기]에 담았다. [이어쓰기]가 나의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창구였던 것이다. 나는 나를 살아갈 수 있게 돕는 인물을 [이어쓰기] 속에 만들어냈고, 매주 그 인물과 함께 도망쳤다. 우울을 피해 새로운 길을 찾았고, 절대로 우리를 찾지 못하도록 꽁꽁 숨었다. 그 인물과 함께 있을 때면 종종 괜찮아지는 기분을 느꼈다. 새로운 내가 되는 것만 같았다. 새로운 삶이었다.

 

  꼭 내가 만들어낸 인물만 그러한 역할을 했던 건 아니었다. 데킬라뮬의 세상 속 인물들도 언제나 나와 함께 해주었다. 그들은 나의 세상과 연결된, 새롭게 탄생한 세상의 인물들이었다. 그들 아침마다 나를 지켜주었다. 내가 무기력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바깥으로 이끌어 [동네]를 걷게 해주었다. 나는 그들과 아침마다 산책하며 선물 받은 주제에 관해, 그것을 선물한 데킬라뮬의 마음에 관해 생각했다. '데킬라뮬은 왜 이 주제를 선물했을까? 데킬라뮬의 세상 속 이 주제는 어떠한 힘을 가지고 있는 걸까? 내가 선물한 주제는 데킬라뮬의 세상에서 어떤 역할을 했을까?' 이런 생각들이 마구 들었고, 동시에 조금 더 살아야겠다는 의욕도 생겨났다. 의욕을 가질 때마다 데킬라뮬의 세상 속 인물들은 나를 칭찬해주었다. 나는 매주 수요일, 그 칭찬을 받기 위해서라도 도망자가 아닌 산책자의 위치가 되어 열심히 걸었다. 산책은, [이어쓰기]는, 데킬라뮬과 데킬라뮬의 세상은, 나를, 나의 세상을 지켰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우울하고, 아침이 오지 않길 기도하며 잠에 들고, 매일 내가 죽는 [꿈]을 꾼다. 꿈이 현실이 되길 바라기도 한다. 이 상태는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이어쓰기]를 하며 조금 변한 게 있다면, 내가 조금은 더 살아낼 거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눈을 뜨면 혼자가 아닐 것이고, 눈을 감기 전에도 혼자가 아닐 것이다. 나의 세상 속 인물이 언제나 내 곁에 있을 것이고, 데킬라뮬의 세상 속 인물도 언제나 내 곁에 있을 것이다. 그들이 항상 내 옆에 있을 거라는 생각, 함께 도망가줄 거라는 확신, 도망자의 자리에서 결국 벗어나게 해줄 거라는 믿음이 나를 살게 했다. 

 

  매주 [이어쓰기]를 하며 행복했다. 나의 글과 데킬라뮬의 글을 읽으며 많이 울기도 했다. 우리의 연결, 서로의 손을 잡고 있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어 기뻤다. 데킬라뮬이 없었다면, 나를, 나의 세상을 언제나 [포옹]으로 맞이해주던 데킬라뮬과 데킬라뮬의 세상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거다.

 

  나는 변함없이 여기에 있을 것이다. 우울과 싸우기 위해 준비하는 내가, 그 싸움을 위해 글을 쓰는 내가, 나의 세상과 데킬라뮬의 세상과 손을 꼭 잡는 내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나의 [이어쓰기]는 계속될 것이다. 죽지 않고 계속될 것이다. 

 

  이어서 계속, 될 것이다.

 


 

우리의 [이어쓰기]는 계속 될 것이다.

이어서 계속,

 


  •  지금까지 첫 번째 스파이시 만다린 프로젝트 [이어쓰기]와 함께 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  두 번째 스파이시 만다린 프로젝트로 찾아뵙겠습니다.  
Posted by 스파이시 만다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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