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요리] 블린치키
스파이시 바나나/[오늘의 레시피] 데킬라뮬 (끝) 2021. 4. 10. 02:54 |
외국에 사는 동안 가장 따뜻한 환대를 받았던 경험 중 하나를 꼽자면, 애인 부모님에게서 받았던 애정이었을 것 같다. 다소 무뚝뚝하던 첫 인상은 낯설었지만, 한 두 번 방문을 거듭할수록 밝아지는 부모님의 표정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는데, 그 온기는 무엇보다도 정성스러운 음식에서 가장 잘 느껴지곤 했다. 그 애정과 추억이 듬뿍 담겼던 음식이 바로 블린치키였다.
정식으로 가족들이 다같이 모인 주말 저녁 식사에 초대되었던 날, 식탁 위에는 정말 많은 가짓수의 음식이 차려졌다. 두 종류의 샐러드와 캐비어가 올라간 빵, 살라미와 햄, 치즈 등과 함께 닭고기 스프를 먹었고, 연어 구이와 그와 함께 곁들일 감자 볶음이 함께 등장했다. 거기에 더해 나에게 한 번 맛을 보라고 어머님이 내어주신 요리는 흡사 메밀전병을 닮은 밀가루 롤이었다. 속을 고기와 야채로 채운 것이라고 했다. 전식을 거쳐 배부르게 본식을 먹고 난 후인데도 내 기억으로 나는 그 큼직한 롤을 두 개나 더 먹어치웠던 것 같다. 내가 밥 먹는 걸 십수 번도 더 본 애인도 놀랄 정도로 많이 먹었으니 이 광경을 처음 보는 부모님은 얼마나 놀라셨을까. 러시아에도 "잘 먹으니 복스럽고 좋다"는 개념이 있는지 궁금해졌다. 아무튼 내가 잘 먹는 걸 보고 뭘 자꾸 먹이고 싶어지셨는지 이후에도 계속 다른 요리들과 디저트를 권하셨는데 유감스럽게도 거기까지 감당하지는 못했다.
이후에도 나는 그 롤이 종종 강렬히 먹고 싶었는데, 어머님 역시 내가 그 롤을 아주 맛있다고 먹은 게 기억에 남으셨는지 롤을 만들 때마다 포장해서 애인을 통해 나에게 보내주시곤 했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 나는 그 레시피를 기필코 배워오겠노라 마음을 먹었다. 이 요리의 이름을 들을 때마다 매번 잊어버려 항상 '내가 가장 좋아하는 롤'이라고만 표현했는데, 이번 레시피로 채택되면서 절대 잊지 못할 이름이 될 것 같다.
사실 블린치키(혹은 블리니)는 러시아식 크레페를 말한다. 납작하게 구운 팬케이크 같은 것에 캐비어*나 연어, 버터나 잼 등을 올려 먹는다. 여기에 고기와 야채를 버무린 속을 넣고 돌돌 말면 고기 블린치키 (Blinchiki s myasom)이 된다.
*한국에서 흔히 캐비어하면 떠올리는 까맣고 작은 알갱이가 아니라 주황색의 다소 큼직한 알들이다. 더 저렴하다.
먼저 속을 채우기 위해 준비할 것은 알배추, 숙주, 파, 고기(아무거나), 마늘 한 톨(충격적일 수도 있겠지만 레시피 출처가 러시아라는 것을 기억하자), 케찹과 마요네즈. 재료들이 상당히 익숙한 것들이다. 사실 이건 정통 레시피라기보단 애인 어머님이 응용해서 만든 버전이다. 내가 보고 배운 건 이 레시피이므로 좀 더 정통에 가까운 블린치키가 먹고 싶다면 러시아 식당을 방문해보도록 하자(물론 식당에서 이 음식을 파는지는 모르겠다).
먼저 배추는 잘게 썬 다음 기름을 넉넉히 두른 팬에 볶는다. 고기는 이미 삶거나 구워진 고기여도 상관없는데 중요한 것은 이것을 잘게 부숴주는 것이다. 고기 분쇄기가 있다면 사용하고, 없다면 아주 작게 다지거나 아님 튼튼한 믹서기 같은 것에 갈아도 괜찮다. 생고기를 준비했다면 다른 팬에 따로 먼저 익혀주도록 하자. 배추가 숨이 죽고 충분히 익으면 여기에 익히고 갈아둔 고기와 다진 마늘 한 톨을 넣고 섞는다. 그리고 약한 불을 유지한 채 숙주를 한웅큼 넣고 숨을 죽인다. 숙주는 잘게 썰 필요 없다. 쪽파가 있다면 이때 송송 썰어 넣어주자.
숙주 숨이 죽었다면 이제 불을 끄고, 케찹과 마요네즈를 넣어준다. 비율은 반반이라고 생각하면 되고, 재료들이 잘 섞일 정도로만 넣어주면 된다. 소스를 너무 많이 넣으면 짜 질 수 있으니 주의하자. 후추도 조금 뿌린다. 대체 이게 어떻게 맛있을까 싶겠지만, 맛있다.
속이 준비되었다면 블리니를 만들어볼 차례. 필요한 것은 밀가루, 우유, 탄산수 혹은 베이킹 파우더와 약간의 소금. 볼에 원하는 양만큼 밀가루를 담고 소금을 한 꼬집 넣어준 뒤 우유를 부어준다. 이때 우유는 반죽이 매끄럽게 흐를 정도로 부어주면 되는데, 처음에는 반죽이 조금 뻑뻑할 정도로 넣어주고 점차 양을 늘려가는 것이 좋다. 밀가루가 적당이 개어지면 소다나 베이킹 파우더를 넣는다. 베이킹 파우더를 쓴다면 아주 소량, 한 꼬집 정도면 되고, 탄산수를 쓴다면 몇 큰 술 부어주면 된다(탄산수를 써야 한다면 처음부터 우유를 너무 많이 부어버리지는 말자. 탄산수 때문에 반죽이 더욱 묽어질 수 있다).
국자로 한 번 떴을 때 반죽이 얇고 매끄럽게 흘러내린다면 준비 끝. 일반 팬케이크처럼 두툼하게 부치는 것이 아니라 구절판의 밀전병처럼 얇게 부쳐야 하므로 이 점을 주의해 반죽의 점도를 맞추자. 이제 상온에 삼십 분 정도 베이킹 파우더나 탄산수가 일을 하도록 잠시 놓아 둔다.
블리니를 부쳐볼 차례. 살짝 기름을 두르고 달궈진 팬에 작은 국자로 한 국자 반죽을 올린다. 중약불에서 투명하다 싶을 정도로 얇게 반죽을 편 뒤(팬을 돌려가며 반죽을 펴는 것이 더 수월하다) 잠시 기다린다. 이때 크기는 지름 26 센티미터 정도이면 충분하다. 반죽이 워낙 얇기 때문에 익기까지 굳이 오래 기다릴 필요는 없다. 한 면이 노릇하게 익으면 뒤집고 다시 익혀준다.
반죽이 떨어질 때까지 블리니를 다 부쳤으면, 적당히 식은 블리니를 깔고, 그 위에 한 큰 술에서 두 큰술 정도 속재료를 올리고, 한 면을 접고, 양 쪽 면을 모아서 접고 돌린다(그러니까 적당히 예쁜 모양으로 접으면 된다). 사 면이 막힌 블린치키가 먹기에 더 좋다.
마지막으로 납작둥글해진 블린치키를 팬 위헤 한 번 더 노릇하게 굽는다.
블린치키만 먹어도 맛이 좋지만 여기에 시큼한 요거트를 함께 곁들여 먹으면 맛이 배가 된다. 사워소스는 거의 모든 식사에 등장할 정도로 대표적인 러시아 음식의 짝꿍이다. 굳이 러시아식 사워 소스를 살 필요 없이, 달달하거나 짭짤한 맛이 없는 시큼하고 꾸덕한 요거트를 구매하면 된다.
블린치키 만드는 영상을 첨부한다. 어떻게 말면 예쁜 모양이 나오는지 말로는 설명이 어려워 첨부하려고 했는데, 여긴 다른 방식의 레시피가 소개되어 있어 참고해도 좋을 것 같다. 돌돌 마는 부분이 궁금하다면 5분 55초에서 확인할 수 있다.
🥞 블린치키 간단 정리 🥞
1) 블리니(팬케이크) 만들기
준비할 것 : 밀가루, 우유, 탄산수 혹은 베이킹 파우더, 소금
1. 볼에 밀가루와 소금 한 꼬집을 담고 밀가루가 잘 개어질 정도로 우유를 부어준다.
2. 베이킹 파우더 한 꼬집 혹은 탄산수 대여섯 큰 숟가락 부어준다. (둘 중 한 가지 방법만 택할 것)
3. 만죽이 적당히 묽고 매끄러워지면 상온에 잠시 놓아둔다.
4. 팬을 달구고 기름을 살짝 두른 뒤 반죽을 아주 얇게 부친다.
2) 속재료 만들기
준비할 것 : 알배추, 숙주, 익힌 고기, 마늘 한 톨, 쪽파, 후추, 케찹, 마요네즈
1. 기름을 두른 팬에 잘게 썬 배추를 볶는다.
2. 잘게 썬 혹은 간 익힌 고기를 다진 마늘 소량과 배추와 함께 섞는다.
3. 숙주와 쪽파 썬 것을 넣고 숙주 숨이 죽을 때까지 익힌다.
4. 케찹과 마요네즈, 후추를 더해 섞는다.
3) 블린치키 마지막 단계
준비된 블리니에 속재료를 적당히 얹고 돌돌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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