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술] 피스코 사워
스파이시 바나나/[오늘의 레시피] 데킬라뮬 (끝) 2021. 3. 20. 01:36 |
종종 친구들과 칵테일의 밤을 보내곤 했다. 친구가 일하는 바에서 얼음을 한 상자 얻어오면, 집 부엌에서 룸메이트끼리 모여 온갖 종류의 칵테일들을 제조해 마시는 간단한 술 파티이다. 나는 칵테일을 만들어 마시는 데에는 별로 취미도 없고 술에 대해 잘 아는 것도 아니라 항상 만들어주는 것을 얻어마시는 입장이었다. 그리고 피스코 사워는 그간의 칵테일의 밤에서 마셨던 그 무수히 많은 칵테일 중 내 마음속 1위를 차지한 술이다. 라임즙을 섞어 만든 칵테일은 그 새콤함이 매력이지만, 종종은 너무 강렬한 새콤함에 혀가 얼얼해져 마시기 부담스러워질 때도 있는데, 피스코 사워는 그 이름에도 '사워(sour)'가 들어갈 만큼 새콤하면서도 계란 흰자가 그 신 맛을 부드럽게 감싸주어 첫 모금부터 목 넘김까지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피스코가 보드카나 진만큼 흔하진 않은 데다 조금 생소한 앙고스투라 비터스라는 음료까지 들어가 집에서 만들어먹기는 조금 까다로울 수 있지만, 혹여나 레시피를 읽고 흥미가 생긴다면 집에서 직접 재료를 구입해 만들어 볼 수도, 혹은 칵테일 바에서 주문해 볼 수도 있겠다.
이 칵테일의 기본 술은 피스코. 피스코는 페루와 칠레 지역에서 생산되는 브랜디이다. 발효된 포도주스를 증류해 만드는 술이며 16세기 스페인 정착민들이 스페인에서 수입되는 오루조*라는 술의 대안으로써 만들어졌다고 한다. 현재 아직도 페루와 칠레 사이에선 피스코의 유래가 어느 지역인지를 두고 논쟁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또 다른 재료는 라임(즙)과 설탕 시럽, 그리고 계란 흰자. 설탕 시럽은 뜨거운 물과 설탕을 1대 1의 비율로(설탕이 잘 녹지 않는다면 뜨거운 물을 조금 더 부어준다) 섞어서 만들면 된다. 마지막으로, 대미를 장식하기 위한 앙고스투라 비터스가 필요하다. 이는 비터스라는 술 종류의 한 브랜드인데, 이 음료만을 마시는 경우는 거의 없고 보통 칵테일을 만드는 과정 마지막에 한 두 방울 첨가해 더 풍부한 맛을 내는 용으로 사용한다. 이제 각얼음과 음료를 섞을 수 있는 셰이커만 있다면 준비 끝.
*오루조는 즙이나 기름을 만들기 위해 압착하고 남은 포도나 올리브, 또는 다른 과일 찌꺼기들을 증류해 만든 술이다.
우선은 셰이커에 피스코 55ml, 라임즙 30ml, 그리고 15ml의 설탕 시럽을 넣어준다. 좀 더 강한 맛을 원한다면 피스코 60ml도 괜찮다. 더 달큰하게 마시고 싶다면 역시 설탕 시럽을 20ml 정도로 넣어주면 된다. 여기에 계란 흰자 30ml를 넣는다. 계란 크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보통 한 잔에 계란 한 알에서 나오는 흰자가 쓰인다. 그다음 셰이커를 닫고, 30초 정도 강하게 흔들어준다. 계란 흰자가 부드러운 크림을 만들 때까지 섞어줘야 하기 때문에 아주 강하게 30초를 쉬지 않고 흔들어야 한다. 계란 흰자는 오래 섞으면 섞을수록 부드러워지니 더 많은 거품을 원한다면 좀 더 오래 흔들어주면 된다. 그다음, 여기에 각얼음을 (셰이커 절반이 찰 분량으로) 넣고 다시 10초간 흔든다**.
이제 음료를 잔에 담아준다. 얼음과 함께 담아도 되고, 체에 음료만 걸러서 담아도 된다. 개인적으로 나는 얼음이 녹으면서 물이 생기는 게 싫어 음료만 담아 마셨다. 피스코 사워는 보통 Coupette라는 잔에 담아 마신다고 한다.
음료를 잔에 담았다면 이제 계란 흰자가 잔 윗부분에 마치 맥주 거품처럼 하얗게 올라온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앙고스투라 비터스를 3방울에서 1대시(=대략 10방울) 정도 떨어트려 주면 된다. (앙코스투라 비터스는 애초에 이렇게 마지막에 첨가하는 용도로 쓰이기 때문에 입구도 다른 술들과는 달리 방울로 떨어트리기 좋게 생겼다.) 이름처럼 씁쓸한 맛이 나기 때문에, 이를 감안하고 몇 방울 떨어트릴지 결정하자.
앙고스투라 비터스는 라임즙이나 계란 흰자처럼 필수적인 재료는 아니지만, 향을 더 풍부하게, 그리고 맛을 좀 더 복합적이게 만드므로 한 번쯤 도전해보아도 좋을 재료이다.
**이렇게 얼음을 넣기 전에 음료만 먼저 섞는 것을 드라이 셰이킹이라고 하는데, 예전에는 거의 모든 칵테일을 이런 방식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이번 레시피를 적으며 혹시 집에 셰이커가 없는 경우 대체할 수 있는 기물이 뭐가 있을까 고민을 해 보았는데, 각 얼음이 강하게 부딪히는 충격을 견뎌야 하고 흔들기 쉽도록 가벼워야 하며 칵테일의 시원함이 잘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소재의 대체물은 딱히 없는 것 같다. 사실 전문가가 아닌 이상 그리 비싼 셰이커를 살 필요는 없으니 만 원 안 쪽의 셰이커 세트를 마련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한 번 두면 언제고 다시 쓸 일이 있을 테니까.
피스코를 이용해 만들 수 있는 다른 칵테일은 딱히 떠오르는 게 없기에 보드카나 진 같은 활용도가 높은 술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오직 피스코 사워를 만들어 먹기 위해 피스코를 산다고 하더라도 후회가 없을 만큼 맛있는 칵테일이라 생각한다. 언젠가 피스코 사워와 잘 어울리는 페루 요리의 레시피도 찾아 도전해봐야겠다.
준비할 것 : 피스코, 라임(즙), 계란 흰자, 설탕 시럽, 앙고스투라 비터스, 각얼음
1. 셰이커에 피스코 55ml, 라임즙 30ml, 설탕 시럽 15ml, 그리고 계란 흰자 30ml를 넣는다. 2. 셰이커를 닫고 30초 이상 세게 흔든다. 3. 섞인 음료에 각얼음을 넣고 다시 10초 간 세게 흔든다. 4. 잔에 음료를 담고 앙고스투라 비터스를 3-10방울 정도 떨어트려 마무리한다. |
+ 이번 레시피는 지인의 도움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Danke für das Rezept und deine Hilfe, mein Iv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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