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레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던 친구가 있다. 그 친구에게 카레의 기억은 그 많고 많은 카레 중에서도 하필 급식으로 제공되는 묽고 밝은 색의 대용량 카레라이스였기 때문이다. 친구는 카레에 대한 인식이 바뀌게 된 계기가 일본 삿포로를 여행하던 중 먹은 스프카레 덕분이라고 한다. 

 

  카레만큼 다양한 국적을 가진 요리가 또 있을까? 그 기원은 인도이지만 우리는 일본식 카레와 태국식 카레, 그리고 한국의 슈퍼에서 파는 카레가루 마저도 그 맛이 모두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카레를 요리할 때만큼은 재료와 만드는 방식에서 좀 더 자유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것 같다. 우유를 넣는다던지, 토마토를 넣는다던지. 사실 레시피를 소개할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시판 카레 가루나 고형 카레가 있다면) 카레라이스는 정말 쉬운 요리인데, 이번 레시피를 통해서는 조금 더 맛있게, 그리고 가끔은 특별하게 카레라이스를 요리할 수 있는 팁을 소개하고자 한다. 

 

  지금까지의 무수한 카레 만들기의 시도들을 돌아보면, 가장 맛있고 성공적이었던 건 토마토를 넣었을 때였다. 감자, 당근, 양파, 애호박 등등 원하는 재료들과 토마토를 함께 볶아 만들면 토마토의 그 새콤한 맛이 계속해서 입맛을 돋구어 마지막 술을 뜰 때까지 첫 입의 그 맛있는 맛을 그대로 가져갈 수 있다. 2인분 기준으로 토마토 한 개 정도면 충분하다. 

 

  토마토가 있다면 또 도전해볼 수 있는 카레는 바로 드라이카레다. 초여름이었다. 무더운 한낮, 장을 보고 돌아와 카레를 만들려고 하는데 걸쭉한 소스가 덮인 밥을 먹기엔 날씨가 너무 덥다고 느껴졌다. 그래서 좀 더 간단한 드라이카레에 도전해보기로 했고, 결과는 대성공. 드라이카레에 들어가는 재료는 일반 카레와는 조금 차이가 있다. 물을 넣고 끓이는 과정이 없기 때문에 감자나 당근과 같이 익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재료들은 생략하고, 양파와 토마토, 간 고기나 쥬키니호박, 가지, 버섯과 같은 재료를 더해주면 좋다. 재료들은 자잘한 큐브 모양으로 썰어준다. 기름을 두르고 토마토를 뺸 야채들을 먼저 볶아준 뒤 양파가 어느정도 투명해지면 그때 토마토를 넣어주고 물이 적당히 나올 때까지* 볶아준다. (고기를 넣는다면) 고기가 완전히 익었을 때 카레가루나 고형 카레를 넣고 카레가 재료들과 잘 섞일 때까지 볶아주면 된다.

  드라이카레를 만든다면 반숙 계란프라이를 올리기를 추천한다. 거기에 파의 파란 부분을 다져서 올려주면 예쁘기뿐만 아니라 맛의 궁합도 좋은 한 그릇이 탄생한다.

 

  *만일 토마토를 넣었음에도 물이 잘 나오지 않아 너무 뻑뻑하다면 물을 반 컵 정도 넣어주자. 수분이 너무 없으면 나중에 카레를 더했을 때 카레가 잘 섞이기도 전에 타버리는 수가 있다.

 

 

 

  요리를 완성한 후, 거실의 모든 창문을 열어놓아 초여름의 아직은 상쾌한 바람이 들어오는 탁자에서, 드라이카레에 냉장고에서 갓 꺼낸 시원한 라들러**를 곁들여 먹었다. 그 여름의 많고 많은 예쁜 기억 중에서 그 순간이 유독 오래 기억에 남는다. 음식을 함께 들었던 사람과, 계절과, 그리고 음식이 더없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던 것 같다. 토마토를 넣은 드라이카레는, 행복감에 충만했던 시간에 함께했던 요리라 오래도록 아껴 간직하고 싶은, 별 것 없는 레시피이다. 이 레시피를 읽는 누군가 역시 자신의 추억이 덧입혀진 새로운 레시피를 간직하게 되었음 좋겠다. 

 

  **레몬에이드를 혼합해 만든 맥주. 도수가 2.5도에서 3도 정도로 일반 맥주에 비해 낮고, 요즘은 레몬 뿐만 아니라 오렌지, 자몽 등 다양한 과일 맛을 첨가한 라들러 브랜드들이 많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역시 레몬 라들러가 가장 맛있는 것 같다. 독일어로 라드(Rad)는 자전거, 라들러(Radler)는 자전거 타는 사람. 맥주를 마시고 자전거를 타고 갈 수도 있을 정도로 도수가 낮다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라고 한다.

 


  🍅  토마토가 들어간 드라이카레  🍅

 

   준비할 것 : 토마토, 카레 가루(혹은 고형 카레), 양파 + 가지, 애호박(혹은 쥬키니 호박) 등등 원하는 재료. 다만 익히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 것으로.

 

   1. 준비한 야채들은 모두 네모난 모양으로 작게 썬다. 

   2. 팬에 기름을 두르고 야채들을 볶다가 양파가 반투명해졌을 떄쯤 토마토를 넣는다.

   3. 토마토에서 물이 나오고 재료가 다 익었을 때쯤 카레가루를 넣어준다.

   4. 카레가루와 재료를 잘 섞어준다.

   5. 꾸덕한 카레 소스를 밥 위에 올리고 반숙의 계란 프라이와 잘게 썬 파 등을 올려주면 끝.  


 

 

Posted by 데킬라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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