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량주라는 술을 알게 된 건 초등학생 시절 가족들과 상하이 여행을 갔을 때였다. 둥그런 판이 식탁 위에서 돌아가는 어느 중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당시 초등학교 2학년이 갓 되었던 동생이 물을 마시다 그대로 뱉어내더니 새빨개진 얼굴로 연신 기침을 해댔다. 무슨 일인고 하니 동생이 물인줄 알고 하얀 도자기 잔에 담긴 고량주를 그대로 들이켰던 것이다. 목이 타는 것처럼 뜨겁다고 하는 동생을 보며 저렇게 무서운 술을 왜 마시나 의아했었다.

 

  그랬던 나는 1교시 수업이 있는 전날 슈퍼에서 파는 가장 싼 고량주를 퍼마시는 사람으로 자랐다(물론 딱 한 번이었지만). 고량주는 비싼 술인줄 알았는데 소주 살 돈으로도 살 수 있다는 놀라움에 까짓거 한 번 사보자는 마음으로 구매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래서는 안 됐다) 

  여튼 그때 고생했던 경험 때문에 고량주는 역시 마시면 위험한 술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하고 살았는데, 어떤 가족 모임에서 고량주를 건네받은 적이 있다. 고량주라면 학을 떼고 있었는데 막상 받아든 잔에서 너무 향기로운 냄새가 나는 것이었다! 이건 내가 알던 고량주가 아닌데, 과연 같은 술이 맞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리고 그때 마셨던 고량주로 진정한 고량주의 맛을 깨달았던 것 같다. 코로 맡아도 좋았던 향은 입 안에서는 더욱 강렬하게 퍼지고 목으로 넘어가는 느낌이 따갑다거나 독하다는 생각이 들긴 커녕 따뜻하니 좋았다. 소주같은 술을 넘기고 나서 올라오는 지독한 알코올 냄새도 없는 깔끔한 뒷맛까지. 이제라도 고량주의 참맛을 알게 되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에서 투명한 증류주를 백주라고 한다*. 고량주는 바로 이 백주에 속하는 술이다. 위 사진을 보면 백주를 만드는 원리를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다. 가장 아래에는 뜨거운 물이 끓고 있고 중앙에는 발효시킨 곡물, 그리고 가장 위쪽에는 찬 물이 위치한다. 곡물로는 쌀, 밀, 보리, 수수 등등이 사용되는데 바로 여기서 수수가 많이 들어간 술에 바로 고량주라는 이름이 붙는다. 고량이 즉 수수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오늘 추천하는 연태 고량주 성분표를 보면 물과 함께 수수 말고도 보리, 밀이 더 들어간다).

  연태 고량주는 중국 연태(옌타이시) 지역에서 생산되는 고량주이다. 사실 중국에서는 연태 고량주가 그렇게 유명한 술은 아니라고 한다. 다만 한국에서는 중국 식당을 중심으로 유통되어 유명해졌다고. 본토에서 어떤 취급을 받는 술인지는 몰라도, 내가 마셔본 바로는 향긋한 고량주의 맛을 느껴보기에 손색이 없는 술이라고 생각한다. 좀 더 맛있게 즐기게 싶다면 지삼선**같은 기름지고 짭짤한 중국 요리와 함께 마시기를 추천한다. 

 

*누런 술은 황주, 포도주처럼 붉은 술은 홍주. 중국에서는 색에 따라 술의 종류가 구분된다.

**감자, 가지, 고추를 한 번씩 튀겨내 달큰하고 (취향에 따라서는 칼칼하게) 볶아낸 요리

Posted by 데킬라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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