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시 토마토/[단막금] 데킬라뮬 (끝)' 13건

  1. 2021.03.19 [단막금 2] 내 친구의 결혼식
  2. 2021.03.05 [단막금 1] 지하철에서 1
  3. 2021.02.19 [소개] 단막금

 

  • 내 친구의 결혼식

 

  봄, 토요일 낮의 결혼식장. 젊은 사람들이 많다. 가 는 신부 대기실에 앉아있다. 가 의 친구들이 오며가며 끊임없이 가와 인사를 주고받는다. 나 가 들어온다. 가 와 함께 있던 친구들은 그녀를 모르는 눈치이다. 하지만 가 는 단번에 나 를 알아보고, 다른 친구들과의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다. 곧 가 와 나, 둘만 남는다.

 

     왔구나!

     응, 덕분에. 청첩장 보내줘서 고마워.

   그럼, 너한텐 당연히 보내야지. 직접 못 줘서 미안해. 동아리 친구들한테는 단톡방으로 청첩장을 보냈는데 거기에 네가 없더라구. 그래도 잘 전달받았다니 다행이야.

나     그러게. 내가 괜히 번거롭게 한 것 같네.

가     아냐, 그런 거. 전혀. 사실 너 나가고 단톡도 그냥 흐지부지 되고. 그 전부터도 그랬긴 했지만. (사이) 다들 바쁘잖아.

나     그렇지. (사이) 오늘 다들 왔으려나? 아직 아무도 못 봐서. 궁금하네, 다들 어떻게 지내는지.

     맞아, 나도 진짜 오랜만에 보는 거다.

    안 그래도 너한테 그전부터 계속 연락하고 싶었어. 동아리 여자애들은 진짜 언제 한 번 만나고 싶었거든. 

     뭐야, 그럼 연락하지 그랬어. 나도 너 어떻게 지내나 궁금했는데. 가끔 주변 친구들한테 물어보고 그랬어.

    아 정말? 그랬구나. 연락을 하고 싶었는데 너무 한참을 소식 없이 지냈잖아. 갑자기 얼굴 보자고 얘기 꺼내는 게 좀, 그렇더라고.

가     맞아. 쉬운 일은 아니지.

나     그래도 너 덕분에 이런 기회 생겨서 정말 좋다. 그것도 이런 좋은 일로.

    식 끝나고 다같이 뒷풀이라도 하면 좋을텐데. 그런 거 있잖아, 외국처럼 막 밤까지 파티하고 그런 거.

나     그러게. 근데 일반 예식장에선 그런 것까지 안 해주지?

   뭐 비용 문제도 있고, 직접 준비하려면 시간도 돈도 많이 들고. 그리고 사정 때문에 결혼식 끝나고 바로 신혼 여행을 가야 돼서, 어차피 계획할 수도 없었어.

    아, 너희 바로 신혼여행 가는구나. 요즘은 많이들 미루던데. (짧은 사이) 낭만적이다.

    나는 미루고 싶었지. 차라리 집에서 쉬는 편이 더 좋은데, 신혼여행은 결혼식 당일에 꼭 가고 싶다고 하는 통에. 회사 휴가도 이미 받았다고 하고.

 

  가 가 말을 생략하며 눈을 찡긋한다. 걔가 그렇다니까.

 

    피곤하긴 하겠구나. 그래도 허니문은 자주 있는 게 아니니까, 잘 놀고 와.

     그치? 허니문은 한번 뿐이니까.

 

  나 는 허니문이 한 번 뿐이라는 보장은 없잖아, 라는 말을 삼키며 싱긋 웃는다.

 

   그럼, 다른 친구들도 만나야 할 테니까, 나는 밖에 나가 있을게. 

   그래 그래. 아, 나가기 전에 같이 사진이나 찍자. (옆자리를 손을 짚으며) 여기 앉아.

 

  나 가 의자에 앉고 두 사람은 다정하게 사진을 찍는다.

 

     (신부 대기실을 나가면서) 이따 신부 입장 잘 해! 

    (애정이 가득한 목소리로) 고마워.

 

  나 는 신부 대기실 입구 근처에 있는 다 에게 다가간다. 다 는 눈앞에 등장한 나 를 보고 잠시 당황하지만 이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보인다.

 

     오랜만이다?

    어, 너도 왔구나.

     응, 청첩장 받았어.

    어, 들었어. 빨리 왔네, 식은 아직 한참인데.

    어쩌다 보니 버스를 좀 빨리 타서. (사이) 축하해. 저렇게 좋은 사람이랑 결혼도 하고. 너 복 받았다 야. 

    그치.

     네가 이렇게 결혼을 빨리 할 줄···, 알았어. 

    아, 그래?

나     응, 너 맨날 '가장' 되고 싶어 했잖아.

    뭐, 6년 사귀었음 결혼할 때도 됐잖아.

    결혼할 때가 뭐 정해져 있나. 만난 햇수로는 6년이어도 너네 나이로 보면 아직 한창인데.

    뭐 한창 땐 결혼하면 안 되냐?

나     아니? 그냥 신기해서 그래. 내 또래 중엔 너네가 제일 먼저 결혼하는 커플이거든.

다     네 주변에선 그런가보지.

    아, 뭐, 그럴 수도 있고. 

 

  짧은 사이. 그때 누군가 다 에게 다가와 축하 인사를 건넨다. 다 는 양손으로 악수를 하며 허리를 연신 굽히며 감사 인사를 한다. 나 는 다 가 인사를 마칠 때까지 옆에서 기다린다. 다 는 불편한 기색이다.

 

    어디 가서 차라도 마시고 있어. 아직 시작하려면 좀 남았는데.

    갈 거니까 걱정 말아. 이거 하나만 말하고 가려고.

 

  나 는 다 에게 가까이 다가가 은밀한 목소리로 말한다.

 

    너 진짜 내 친구한테 잘 해. 나한테 했던 것처럼 그렇게 뭣같이 굴지 말고. 

 

  나 는 다 를 뒤로하고 예식장 내 카페로 향한다.

 


 + [단막금 3]은 4월 3일 금요일에 업로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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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단막금  (0) 2021.02.19
Posted by 데킬라뮬
:

 

  •  지하철에서 

 

  베를린. 토요일 낮의 지하철. 좌석에는 드문드문 빈자리가 남아있다. 앉아있는 사람들 중에는 1과 2도 있다. 2는 1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몸을 1쪽으로 많이 기울이고 있다. 두 사람은 화기애애하다. 정차 후 문이 열리고, 3이 들어선다. 3은 커다란 크로스백을 메고 있고, 한쪽 팔에는 신문을 끼고 있다. 채 잠기지 않은 가방 틈 사이로 신문 더미가 보인다. 1은 지하철 통로 중앙에 선다.

 

3   (목소리를 가다듬고) 실례하겠습니다. 저는 여기 신문을 팔러 나왔습니다. 여러분이 보시다시피요. 어떤 신문인지 소개를 좀 드리도록 할게요. 이 지하철이 향하는 종점 역, 그곳에 작고 값싼 빌라들이 모여 있다는 건 아시죠? 아마 거기 주민 중 절반 이상은 예술가들일 거라 장담해요. 그걸 어떻게 아냐면요, 이 신문이 바로 그 사람들이 만든 거거든요. 저는 이 신문의 배급과 판매를 맡고 있는 사람입니다.

 

  3이 통로 중앙으로 천천히 돌아다니기 시작한다.

 

3   시, 소설, 그림, 사진, 희곡, 여러분이 원하는 모든 예술은 이 안에 다 들어가 있습니다. 단돈 3유로에 값진 시간을 사 보세요. 자본의 부름을 받지 못한 예술가들이라 그렇지 실력 하나는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장담해요.

 

  조용한 와중에 유일하게 2만이 손을 든다. 3은 곧바로 2를 발견하고 반가워한다.

 

2   3유로라고요?

3   네, 여유만 되신다면 기부금도 받습니다. 주고 싶은 만큼 주시면 돼요. 물론, 3유로 이상으로요.

2   혹시 돈 말고 다른 것도 받으시나요?

3   네?

 

  2가 발치에 놓인 가방에서 양손에 가득 들어오는 단지를 꺼낸다. 1은 옆에서 재밌다는 표정으로 보고 있다.

 

2   꿀이에요.

3   네?

2   좋은 꿀이래요. 방금 시장에서 사 오는 길이에요.

3   그런데 왜 이걸 주시는데요?

2   장 보느라 현금을 다 써버렸거든요.

 

  3은 여전히 어리둥절해하며 1을 바라보며 눈짓으로 묻는다.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인지 설명해줄 수 있나요?

 

1   진짜예요. 저도 이 사람 오늘 처음 봤는데요, 그 꿀 산 장터에서요. 조금 웃긴 사람 같아서 같이 밥 먹으러 가는 길이거든요.

3   밥 사 먹을 돈은 있나 보네요.

1   웃겨준 대가로 제가 사기로 했어요.

2   멋진 사람이에요.

3   그럼 밥 사신다는 그쪽이 돈 주고 신문을 사는 건 어때요?

2   아니요, 제가 선물하고 싶어서 사는 건데요.

1   (사이) 정말 좋은 꿀이래요.

 

  사이

 

3   좋아요. 꿀차나 타 먹죠 뭐.

2   후회 없는 선택일 거예요.

 

  3은 2에게 신문을 건네고, 2는 3에게 꿀단지를 건넨다. 3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꿀단지를 받아 든다. 3은 열차 칸의 다른 사람들을 둘러본다.

 

3   혹시 또 신문 사실 분 계세요? 꿀로도 바꿔드리고 야채랑도 바꿔드릴 수 있어요. 이왕이면 햄이나 소시지가 더 좋고요. 없으세요?

 

  3은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열차의 다른 칸으로 터벅터벅 걸어간다. 2는 재킷 주머니에서 볼펜을 꺼내 신문 위에 무언가를 적는다. 그리곤 1에게 건넨다.

 

2   내 번호예요.

1   이거 주려고 신문 산 거예요?

2   종이가 필요하잖아요.

1   꿀이 아깝네요.

2   내 번호가 꿀 한 통보단 값어치 있을걸요?

 

  1은 웃으면서 신문을 받아 든다. 지하철이 정차하고, 두 사람은 함께 지하철을 내린다.

 


+ 베를린에서 지하철을 탔을 때 본 풍경을 기억하며 써 보았습니다. 물론 그때 그 꿀단지를 든 사람과 신문을 든 사람이 정확히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는 알 수 없지만요.

+ [단막금 2]는 3월 19일 금요일에 업로드됩니다.

Posted by 데킬라뮬
:

 

  내가 모르는 언어를 쓰는 곳으로의 여행을 좋아한다.  혼자 커피를 마시거나 점심을 먹는 중에, 혹은 지하철을 기다리는 중에 들리는 낯선 목소리와 억양을 듣는 일은 내가 여행 중임을 매 순간 감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심심해지면, 종종 그들의 대화와 그들이 처한 상황을 내 멋대로 상상해 적어보곤 한다.

 

        A: 왜 이제야 와?

       B: 오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럼 그들에겐 평범할 순간들이 나에게만은 연극의 한 장면처럼 보이곤 한다. 그런 일상의 순간들을 극의 형식으로 엮어보고자 한다.

 

*격주 금요일 연재.

Posted by 데킬라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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