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후 네 시

 

  오후 네 시의 카페. 두 사람이 작은 사각 테이블을 두고 마주 앉아 있다. 오후의 햇살이 카페 창문을 통해 들어온다. 사람이 너무 많지도, 아주 적지도 않아 적당한 소음이 가게를 채우고 있다.와 은 편안히 대화를 이어가고 있다.

 

     일이 잘 맞다니 다행이야.

     처음엔 정말 싫었는데, 알잖아, 나 일찍 못 일어나는 거.

     응. (사이) 늦게 출근해도 되는 회사는 없냐면서 징징댔지, 맨날.

     그니까. 네가 끈질기게 매일 깨우지 않았으면 나 한 달도 더 못 나가고 그만뒀을 거야. 

 

  수,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면허 따고, 차도 있고, 이제 지하철로 다닐 필요가 없어져서 훨씬 나아. 

     잘 됐네.

     응. (사이) 넌? 아직 박물관에서 일해?

     어, 정직원 됐어.

     잘됐다! 계약직 끝내고 싶어 했잖아.

     근데 일은 뭐, 똑같지. 

     그래도. 

     승진하면 그래도 일이 좀 더 많아질 것 같아. 좀 새로운 업무도 해보고.

     금방 그렇게 될 거야. 축하해.

     고마워.

 

  짧은 사이

 

     이 동네 얼마 만에 온 거야?

     이쪽은 올 일이 거의 없어. 몇 주 전인가 한 번, 구청 갈 일이 있어서 잠깐 왔었어.

     그랬구나. (사이) 안 그리웠어?

 

  잔과 수의 시선이 잠시 마주친다. 수,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올 시간도 없고. 주말에 시간 날 땐 집 밖에 나가기가 싫더라고.

 

  잔, 미소 짓는다

 

잔     오늘은 나와줘서 고맙네. 너 온 김에 여기 산책이나 갈까? 우리 자주 가던 루트 있잖아. 하천 따라서 걷다가 공원에서 앉아 있다가 간식 사 먹고 했던.

     (살짝 웃는다) 비 올 땐 가게들이 문을 닫아서 속상했는데.

     그럴 땐 맨날 여기 왔었잖아.

     그랬지.

     오늘은 저 자리에 사람들이 있어서 아쉬워. 우리 자리였는데. (사이) 아, 너 그거 알아? 그 핫도그 집 주인 이제 다른 사람이야. 멀리 이사 가신다고, 가게 넘겨주기로 했대. 아주머니가 네 안부 물어보시더라. 

     (사이) 그래서, 뭐라고 했어?

     (사이) 잘 지내고 있다고 했어. 아, 그리고 거기 아이스크림 가게가 새로 생겼는데,

     (말을 끊고) 이제 이런 얘기 그만 하자.

 

  잔, 수를 쳐다본다.

 

     내가 뭐 잘못 말했어?

     아니 그냥, 계속 옛날 얘기하는 거, 우리가 이러는 거 좀 그런 것 같아.

     뭐가 좀 그래?

     우리 헤어졌잖아.

     그럼 이런 얘기도 못 해?

     그냥, 넌 너고 난 나잖아. 우리 각자 삶이 있었고, 지금도 있고 그냥, 그런 얘기나 하면 안 될까.

     지금까지 그런 얘기 했어. 여기 오니까 옛날 생각도 나고, 이 동네에서 우리가 같이 살았던 게 몇 년인데 얘기 안 하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냐?

     어차피 지난 일이잖아.

 

  잔, 수를 바라본다. 언뜻 노려보는 눈 같기도 하다.

 

     되게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것 같네.

     내가 언제 그렇게 말했어? 그냥 지난 일이라고. 

     그러니까, 지난 일. 너한텐 그 모든 게 그냥 지난 일 하나로 설명되는 거야?

     당연히 아니지. (사이) 그렇다고 다 지난 일이란 게 틀린 말도 아니잖아.

 

  잔, 커피를 마신다.

 

     혹시 애인 생겼어?

     뭐? 갑자기 왜 그 얘기가 나와?

     아니, 네가 이러는 게 혹시 지금 애인이 있기 때문에 불편해서 그런 건가 해서. 

     그런 거 아니야.

 

  사이

 

     그럼 정말 너한테는 지난 일인 거구나.

 

  잔, 떠날 채비를 한다.

 

     먼저 가볼게. 미안해.

     잔.

     내가 너무 서둘렀나 봐. (사이) 내가 우리에 대해 너처럼, 그렇게 말할 수 있을 때 다시 만나자. 

     (힘을 주어) 잔.

 

  잔, 동작을 멈추고 잠시 수를 바라본다. 수, 말을 꺼내지 못한다. 잔, 자리에서 일어나 테이블을 떠나려 한다.

 

수     나도 아직 기억해. 전부, 자주. 아무것도 아니었던 게 아니야.

 

  잔, 수의 말을 듣는다. 잔은 대답하지 않고 카페를 나간다. 수는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다가 카운터로 간다. 안쪽 소파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떠난다. 그 자리를 바라보는 수. 수는 커피 한 잔을 더 주문하고 사람들이 막 떠난 소파에 앉아 몸을 파묻는다.

 

  밖으로 나간 잔은 공원으로 가는 길 쪽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반대 방향으로 걸어간다.

 


+ [단막금 10]은 7월 23일 금요일에 업로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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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데킬라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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