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도감 베끼기

여기에는 식물이 잘 자라지 않았으므로

식물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다녔지

여기 사람들은 식물을 보고 싶었으므로

주말마다 낙하산을 타고 외딴 숲으로 향했지

나는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게 두려웠으므로

식물을 싫어하는 척했지

매일 밤 숨어서 식물도감을 베껴 그렸다

새 색연필을 사기 위해 문구점에 간 날

내 스케치북은 발견됐다

집에 도착했을 때

같이 사는 친구는 내 스케치북의 그림을 보여주며

숲으로 가자,

이걸 실제로 보는 거야,

설득했다

숨겨진 다른 스케치북의 개수와 절벽에 오른 날들을 모르면서

더는 몰래 그릴 수 없었으므로

함께 절벽으로 향했다

머릿속에서 식물들이 빠르게 자라났다

절벽 위에선 숲이 보이고

그 방향으로 친구는 뛰어내리고

 


 

 


 

나는 

뒤따라갈게, 뒤따라갈게, 소리치다 

집으로 달아났다 

텅 빈 집에는 

숲이 불타고 있다는 뉴스 소리만 

사라질 것들을 베껴 그리려고 했으나 

스케치북은 어디에도 없었다 

식물도감도 없었다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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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마지막 상상

 

친구와 가족과 연락을 조금씩 하지 않는다.

친구들이 알고 있는 도어락 비밀번호를 바꾸었다.

날 아무도 찾지 않게 만들도록.

며칠 동안은 입맛이 없어 아무것도 먹지 않다가

또 어떨 땐 아무 생각 없이 마구마구 미친 듯이 먹었다.

쓰레기를 처리할 힘이 없어서 내 방에 쌓아뒀다.

점점 냄새가 나고, 벌레가 생기지만 아무렇지 않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잠만 잔다.

자고 일어나도 졸리고,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노래도 듣지 않고, 씻지도 않는다.

누굴 만나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나는 침대에 엎드려서 계속 운다. 

나에겐 더 살아낼 힘이 없고, 이대로 모든 게 멈춰버렸으면 한다. 

‘내가 죽는다면’이라는 생각을 매일 한다. 

이 세상이 현실 같다가도, 가짜 같기도 하다. 

남겨질 사람에게 전할 유언을 머릿속으로만 생각하고 실제로 쓰지는 않는다. 

방에 있는 식물들이 점점 시들고 있다. 

꼭 나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쌓여가는 고지서, 보지 않는다. 

어떻게 아프지 않게 죽을 수 있는지 생각한다. 

이 생각이 든다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아직 살고 싶은 마음이 있는 건가? 생각한다. 

먼 곳으로 떠나고 싶다고 생각한다. 

아무도 나를 알지 못하는 곳에 가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죽어도 달라질 게 없다고 생각한다. 

 

 

 

이건 나의 마지막 상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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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의 시간

 

  일주일 동안 규칙적으로 밥을 먹지 못했다. 편하게 잠을 자지 못했다. 멍하니 있는 시간을 줄이지 못했다. 나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병원에 가지 못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을 막지 못했다. 내가 견딜 거라는 믿음을 가지지 못했다. 친구에게 이 세상이 다 거짓인 것 같다고, 이제는 살아낼 힘이 없다고, 약속을 지키지 못할 수도 있다고, 말해버렸고, 예전의 다짐을-이 말들을 하지 않겠다는 것-지키지 못했다. 더는 내 우울에 관해 쓰고 싶지 않지만, 쓰지 않는다면 더 내가 날 잃을 거고, 막막해질 거다.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할지,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지 모르겠다. 0의 상태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계속한다.

 

  내가 다시 나를 찾을 때까지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고, 아무 곳도 가고 싶지 않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여기에 이러한 말을 해도 되는 걸까.

 

 


  •  [포착도감]은 한 주 쉬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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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Bigbet

해후 (Feat. 시와 & 이혜지), 김신영

걷다 보니, 김목인

지하철 한 정거장 거리를 함께 비를 맞으며, 신승은

서울역에서 출발, 정밀아

북극광 (KIRARA Remix), KIRARA (키라라)

Polydream, 다브다 (Dabda)

slow motion, Pola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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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착도감 0416] 데킬라뮬  

 

 


 

 [포착도감 0416] 믹스키트 

 

 


 

 [0416] 

 

Posted by 스파이시 만다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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