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 1

 

나   생일까진 살아보려고요.
너   생일이 언젠데?
나   금요일이요.
너   3일 뒤네? 뭐 갖고 싶은 거 있어?
나   없어요.
너   정말?
나   네. 갖고 싶은 것도 없고, 갖고 싶어 한 적도 없고, 그래서 한 번도 받아본 적도 없고, 말한 적도 없고. 태어난 게 뭐 대수라고.
너   대수지. 난 네가 있어서 행복한 걸?
나   정말 그랬으면 좋겠어요, 정말.

너   정말 그래, 정말. (사이) 병원은 어땠어?
나   입원하는 게 어떻겠냐고 물어보더라고요.
너   그래서?
나   돈 없다고 했죠. 돈도 없고, 가족들한테 말하기도 싫고
너   얼마정도래?
나   몰라요. 물어볼 걸 그랬어요. 
너   화요일에 가서 물어보면 되겠다.
나   화요일까지 살아지면요.
너   약속하자, 응?
나   생일날까지 살아보고.
너   그럼 생일날 약속하자. 
나   생일날 하고 싶으면. (사이) 근데 저 아무것도 하기가 싫어요. 무기력하고, 현실 같지 않고, 다 가짜 같고. 선생님이 혼자 있지 말래요. 마음 놓을 수 있는 사람이랑 있으라고, 다음 주 병원 올 때까지 버틸 수 있겠냐고, 그래 주면 안 되겠느냐고.
너   죽지 말아줘.
나   점점 더 무뎌지는 것 같아요. 몇 달 전보다 더. (사이) 가까워지는 것도 같고.
너   내가 너 정말 많이 사랑하는 거 알지? 우리 가족보다 더 사랑하고. 나, 너밖에 없어.
나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진짜 그랬으면 좋겠다. (사이) 제가 죽으면 아르헨티나에 이구아수 폭포로 보내주세요. 땅 밑은 너무 답답할 것 같아. 
너   그럼 우리 다음 생엔 함께 물로 태어나자. 물로, 비로, 강으로, 바다로, 눈물로. 그렇게 태어나자. 

 

 

2017 - 2

 

  지금의 난 어떤 상태일까. 이 글을 쓰면서 문득 생각이 들었다. 현재 난 괜찮을까, 그런 걸까. 결론만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괜찮은 것은 없다. 항우울제 6봉지를 한 번에 들이켜보기도 하고, 옥상에 올라가 드넓은 땅을 바라보며 추락하는 생각도 해보고, 많은 죽음의 시도와 상상들을 해보았지만, 아직 괜찮지 않다. 그 많은 것들이 실패했고, 무뎌졌지만 아직 난 많이 두렵다. S는 나의 상태에 대해 안 후 매일 질문을 한다. 행복하니? 난 고개를 끄덕일 수 없다. 하지만 단 하나 외칠 수 있는 것은 “죽지 않아, 죽지 않을 거야, 난 죽지 않을 방법을 알아.”  막연하지만 단단한 이야기. 난 죽지 않을 방법을 터득했다. 괴로워도 죽음을 실현하지 않을 방법. 3개월 반 동안 이 학교는 나에게 그 방법을 알려주었다. 죽어가는 삶 속에서 죽음을 늦추는 방법, 살아감은 아니지만, 그 여지를 가지는 방법을.

 

  첫 글쓰기 시간이 떠오른다. 자서전 적기. 우린 각자가 살아온 삶에 관해 적어왔다. 나는 OT 이후 동기들과 친해져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가졌었다. 왜냐하면 내가 지켜보았던 그들의 모습은 나와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너무 밝고 깨끗해서 우울과 불안은 찾아볼 수 없었던 그들. 하지만 첫 글쓰기 시간 이후 그 생각은 온전히 뒤집히게 되었다. 동기들의 글과 이야기는 나의 것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고, 나와 같이 우울하고 아픈 것들이었다. 그들은 아픔을 숨기지 않았다. 자해했던 사실, 정신과를 다녔던 사실 그 모든 것을 말했다. 난 그 용기에 힘을 얻을 수 있었다. 나와 먼 거리에 있다고 생각했던 그들에게 용기를 얻고 위로를 받으니 알 수 없는 감정이 북받쳤다. 불현듯 눈물이 흘렀다. 말을 할 수 없었다. 그 순간 나와 그들은 보이지 않는 선으로 연결되었다.

 

  그 날 이후 모든 것은 달라졌다. 우울증에 걸리기 전의 상태가 된 것만 같았다. 의지와 약으로도 해결될 수 없었던 것이 동기들의 존재로 나아질 수 있다는 것에 놀라웠다. 그때부터 학교생활은 너무 즐거웠다. 불안, 그리고 날 우울로 몰고 가는 것들을 숨기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사람들도 피하지 않게 되었고, 더는 무기력에 빠지지도 않았다. 그때 나를 또 크게 변화시켜준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은 바로 K다. 

  누군가가 먼저 나에게 다가와 인사를 하는 경우는 정말 드문데, K는 한 수업시간에 나의 이름을 부르며 인사를 걸어왔다. OT 때 같은 조여서 이름이 기억난다고, 그래서 인사를 한다고, K는 말했었다. 그 날 이후 우리는 급격하게 친해지게 되었는데, K는 시를 쓰는 사람이었다. K는 23살이다. 내 나이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다고 했다. 나의 생일, 처음으로 K와 술을 마셨는데 그 날은 K가 문학과 사회에 자신의 시를 공모하고 온 날이었다. 난 생일 선물로 K가 쓴 10편의 시를 받았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시들을 읽자마자 주저앉고 말았다. 숨을 쉴 수 없었던 시, 활자들의 이야기. K의 시는 살기 위해 내뱉는 소리 같았다. 후, 하. 내뱉어야 살아갈 수 있는 것 같았다.

  “K는 왜 시를 써요?”

 

 


 

 

2018 - 1

 

생일이었다.
자정이 지나거나 또는 지나지 않았을 때 사람들이 축하해줬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케이크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초를 불며 소원을 빌었다.
불면 날아갈 법한 그런 소원이었다.

후, 안녕.

모방의 소리를 내는 눈을 잊지 못해서 
생일이 그리 행복하지 않았어.
보내지 못할 엽서와 부끄러운 결백을 묻었던 순간이 생각나서 울음이 터지지 않았어.

그래서 이미 잃어버린 편지와 내 책상 앞에 붙여진 편지는 절대로 만날 수 없게 되었지.

연약해서 사라지는 것들에 관해 지속적으로 생각하게 되고, 
나는 그때마다 울 것만 같은 표정을 짓게 돼.

줄지어 놓은 책들은 끝없이 늘어나기만 하고 
간결한 배치를 잊어가기만 한다.

나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책과 책 사이, 아님 편지와 편지 사이?

하나씩 떼어쓰는 달력은 한 달째 그 자리이고 
나는 아직 생일의 한 달 전에 있어.

고정된 시간은 나와 나의 끝을 부정해.
나는 어디에 서 있는 거야.

비가 오지 않는데 내 눈앞에는 비가 내리고 
그게 환각이라는 사실에 나는 믿음을 버리고.

굴러가는 빛이 있다면 믿을 수 있을까.
그 빛, 이번에 선물 받았어.

고정해놓지 않으면 도망가는 빛은 내 속으로 왔어.

내가 가장 불완전한데, 선물 받아도 되는 걸까.

이제 우리 서로를 증오했으면 해.*
더 사랑했다간 이 빛이 사라져버릴 것만 같아.

 

* 여성민, 에로틱한 찰리 中 시인의 말

 

 


 

 

2019 - 1

 

프리지아 꽃말처럼 우리 조금만 천진난만하게 살아보자, 라는 말을 들은 생일 전날.

나는 그 말이 낯설어서 어쩔 줄 몰랐다.

천진난만하게 사는 게 뭐야? 라고 묻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만 끄덕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오른손에는 케이크와 노란 프리지아 꽃다발, 왼손에는 파도 사진들로 이루어진 사진집이 들려있었지.

지하철에서 한참 그것들을 바라봤다.

그 자리에서 울음이 터질 것 같았지만 꾹 참았다.

천진난만, 천진난만, 천진난만, 그 말을 되뇌며.

∴ 1

테이블 주위에 둘러앉아 말린 라즈베리가 들어간 케이크를 먹었다.

우리는 어떠한 이야기를 나눴는데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프리지아 향을 맡을 때마다 천진난만하게 웃어보려 했지. 

잘 되지 않았다.

웃음과 생일은 멀리 떨어져 있는 것, 나와 천진난만도 마찬가지.

속으로 김사월의 죽어를 흥얼거리고, 무얼 위해 다시 생일을 맞았는지 고민하고.

사람들의 표정이 기억나지 않는다. 

다시 죽지 못한 나를, 태어난 날을, 질긴 생명력을 가진 내 표정을 기억한다. 

스물 이후부터 생일에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 1 

3월의 마지막 날에는 엽서를 받는다.

이번에 받은 엽서는 내가 작년 수의 생일에 선물했던 엽서. 

선물한 엽서에는 새로운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새로운 이야기가 담긴 엽서는 새로운 엽서. 

내가 선물한 게 아닌, 온전히 수의 것.

이런 변화를 감지하는 게 좋다.

변화는 큰 힘을 지니고 있고, 나는 그 힘을 믿고.

작년 생일, 수에게 두 장의 엽서를 받았고, 늦은 밤 우리 둘은 한동안 말이 없었지.

그날을 떠올리면 아찔하고 두렵고.

우리 둘 사이 위태로움은 어느순간 사라졌다.

우리에게는 그 순간 이후만 남았다.

그 순간 이후, 그 순간 이후의 우리.

수와 맞이한 세번째 생일.

이후의 우리를 기다린다.

∴∵

흰 광물 양초

직접 만든 수채화 스티커

파란 엽서

잊지 않고 내 생일을 기억해주는 사람

우리가 처음 술을 마셨던 날을 잊지 못한다.

2년 전, 내 생일

이제는 사라진 학교 앞 술집에서 맥주를 마셨지.

그날 선물받은 시들, 그 시 속 순간들 모두 기억한다.

마지막에 쌓아올린 어두운 입술이 새해부터 서서히 무너진다면

그 이후 변화한 건 사라진 공간뿐.

끝없이 이어지는 우리의 시간과 시들.

이러한 순간이 담긴 시를 쓰고 싶다.

∵∴

지하철 7번 출구 앞에서 만난 우리.

주황빛 시집을 들고, 함께 우산을 쓰고 어둠속을 걸었지.

당신과 나는 생일을 쉽게 던져버리는 사람이었다.

이제는 그러지 않기로 했어.

우리는 어떤 것의 의미를 찾았고, 그 의미는 우리를 축하하게 만들었다.

어둠속에서 우린 이야기했지. 태어남의 순간을, 그 지긋지긋한 반복의 특이점을.

우리는 사랑을, 우정을, 그것들이 주는 기쁨을 알아버렸고, 서로 연락이 되지 않아도, 갑작스럽게 만나게 되어도, 우울로 약속이 사라져도 괜찮을 수 있게 되었지.

엽서는 번진 글자들로 가득했다.

우린 희미한 언어들의 의미를 해석할 수 있게 되었다.

내년에도, 내년의 내년에도, 그 먼 훗날의 내년에도 희미한 기념의 순간들을 맞이하겠지.

이제 괜찮아질 것이다.

쉽게 죽어버리지 않을 것이다. 서른까지는. 약속한 순간까지는.

괜찮아질 것이다.

같은 책을 받더라도, 반복되는 순간을 맞이하더라도.

천진난만하게 웃어버리더라도, 누군가 나를 버리더라도, 시를 잘 쓰지 못하더라도.

5월이다.

지나친 모든 시간을 차근차근 기록할 것이다.

이건 3월의 마지막 일기이다.

일기는 끝나지 않는다. 내가 괜찮아질 때까지.

 

 


 

 

2020 - X (자료없음)

 

 


 

 

2021 - 1

 

생일이었다.

 

 

 

 

2021 - 2

 

울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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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릉에 다녀왔다

홀로 강릉에 간 건 처음이었다

 

아무 계획 없이 떠난 강릉이었기에

계속해서 가야 할 방향을 찾아야 했다

 

어디로 가야 할까?

 


 

이쪽과 저쪽

어느 방향으로?

 

화살이 가리키는 쪽에 북극성이 있다고 했다

 

제트기가 지나가고 있었다

 

물의 방향을 따라가면

 

바다를 만나게 되는 시간과 마주하게 된다

 

등대의 마음을 배우고 싶어서

오랫동안 머무른다

 

바다의 방향을 따라가면

 

또 다른 바다에 닿게 된다

 

모래사장에 덩그러니 놓인 통나무 스툴에 앉아서

방향을 찾는다

 

어디로 가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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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나를 잃고 있을 때 

 


 

바다로 간다

 

바다를 따라 걸어본다

 

잠시 멈춰 쉬고 싶으면 그렇게 한다

 

다시 걷고 싶으면 그렇게 한다

 

 


 

하늘을 본다

 

구름을 따라 걸어본다

 

자세히 보아도 된다

 

 


 

내가 나를 잃고 있을 때

언제든 바다로 간다

 

더 가까이 가고 싶으면 그렇게 한다

 

 


 

내가 나를 되찾고 싶을 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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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병원에 가기 시작했다

나와 마주하는 게 무서워 한참 가지 않았는데

 

병원에 가는 내내 울었다

누가 날 끌고 어디든 도망가주길 바랐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다시 병원에서 내 안에 있는 나를 끄집어내야 했다

 

선생님은 긴 이야기를 듣고는 나에게 말했다

 

너무 모호하네요

믹스키트 님의 우울이 너무 모호해서 보이지가 않아요

 

저도 제 우울의 모양을 몰라서 여기에 왔는 걸요

 

내 우울은 도대체 어떻게 생긴 걸까

 


 

[내 우울의 모양 1]

 

 

 

 

[내 우울의 모양 2]

 

 

 

 

[내 우울의 모양 3]

 

 

 

 

[내 우울의 모양 4]

 

 

 

 

[내 우울의 모양 5]

 

 

 

 

[내 우울의 모양 6]

 

 

 

 

[내 우울의 모양 7]

 

 

 


 

끝내 찾을 수 없겠다는 생각에 주저앉는다

막막함이 마구 몰려들어 나를 휩쓴다

아침이 오지 않는 세상에 갈 수 있길 간절히 빌어본다

 


Posted by 믹스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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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하늘

 

 

 


 

내가 만난 고양이

 

 

 


 

내가 만난 길

 

 

 


 

내가 만난 음악

 

 

자랑, 이이언
친구, 나이트오프
People Eating Fruit, CARIBOU
reyn, cotoba
0308, 보수동쿨러

 


 

내가 만난 나

 

 

 


Posted by 믹스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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