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요리] 오믈렛
스파이시 바나나/[오늘의 레시피] 데킬라뮬 (끝) 2021. 2. 12. 08:12 |
세상에 오믈렛이라는 요리가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된 건, 열 살 즈음 상하이의 어느 호텔에서 조식을 먹을 때였다. 패키지여행이라 조식 뷔페에 즉석에서 음식도 만들어서 내어주는 코너도 있는 꽤 고급 호텔에 묵었었는데, 그 요리들 중 하나가 오믈렛이었다. 오믈렛 비슷한 단어는 오므라이스밖에 모르던 시절이었기에, 요리사가 계란물을 휘휘 젓고 팬 위에 굴리는 동안 계란 안에 들어갈 밥은 언제 볶나 계속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볶은 야채를 계란 위에 조금만 얹고 그대로 말아 접시 위에 담아 건네줄 때, 이게 '진짜' 오믈렛이라는 요리구나, 하는 탄성이 머릿속에서 울렸던 것 같다. 그때 그 요리사의 별 것 없는 조리법이 너무 강렬해* 그 이후로 오믈렛을 만들 때 항상 그 방법을 고수했다.
*사실 아직도 오믈렛이 완성되기를 기다리면서 그 젊은 요리사에게 느꼈던 호감 비슷한 감정, 거기서 시작한 러브 스토리 따위의 망상을 했던 게 기억이 난다. 접시를 건네받고 자리로 돌아오면서 금세 사라져 버리는 농담 같은 거였지만. 그때부터 누군가에게 호감을 느끼는 게 버릇이었나 보다.
그 이후 다시 한번 오믈렛에 대해 신선한 충격을 받은 건, 여행을 하며 묵었던 친구 집에서 친구가 이게 포르투갈 식이라고 하며 만들어준 오믈렛을 먹었을 때였다. 팬 모양대로 넓적한 오믈렛이라니. 큼직히 썬 재료들이 주는 넉넉한 식감은 새로운데, 그렇다고 계란의 부드러움은 그대로 남아있어, 먹자마자 바로 반해버린 오믈렛이었다. 그날 이후로 친구에게 레시피를 전수받아 여행 내내 아침 메뉴로 즐겨 먹었다. 가끔은 내가 원래 하던 방식의 둥그런 오믈렛을, 가끔은 친구의 포르투갈식 오믈렛을. 그래서인지 오믈렛을 요리할 때면 여행지에서의 낯선 슈퍼마켓과 부엌들이 떠오르고, 요리하는 그 순간도 여행 중인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우선은 내 방식의 오믈렛 레시피부터. 필요한 것은 당연히 계란 3-4알. 네 알까진 아니더라도 적어도 두 알 이상은 준비하는 게 좋다. 오믈렛 속을 채워줄 재료들은 원하는 걸 선택하면 되는데, 나는 보통 냉장고에 굴러다니는 자투리 야채들-양파, 당근, 감자, 버섯, 파프리카, 토마토-와 베이컨이나 햄을 넣는다. 야채만으로 만들어도 충분히 맛있다. 야채들은 가짓수를 많이 준비할 필요는 없고, 두 종류 정도만 있어도 충분하다. 토마토가 있다면 나는 토마토는 꼭 넣는 편이다.
재료가 준비되었다면, 우선 오믈렛 안에 넣을 야채나 햄을 작게 썬다. 다지는 정도까진 아니지만 거기에 거의 근접하게 잘게 썰어주는 게 좋다**. 하지만 물론 이것도 취향에 따라. 큼직하게 썰면 단지 야채를 익혀야 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계란을 말 때 노력을 더 들여야 할 뿐 맛에 큰 차이는 없을 것 같다. 토마토를 넣는다면, 다른 야채들보다는 큼직하게, 그냥 작다 싶은 정도로만 잘라주면 된다.
이제 팬 위에 썬 재료들을 볶는다. 단, 토마토는 제외하고. 토마토는 나중에 계란과 합쳐줄 때 넣으면 된다. 야채들을 볶으면서 소금과 후추로 살짝 간을 한다. 재료가 익기를 기다리는 동안 준비한 계란을 풀어 계란물을 만들고 소금을 약간 친다. 계란을 충분히 저어주는 게 좋다.
볶던 재료들이 익었으면 그릇에 따로 담아두고, 키친 타월 같은 것으로 팬을 한 번 닦아준 다음 기름을 살짝 두르고 계란물을 부어준다. 이때 팬이 너무 뜨거운 상태이지 않도록 주의하자. 중약불에서 계란이 서서히 익어갈 때까지 기다리다가 볶은 재료들을 계란 위에 올려준다***. 최소한 팬에 닿은 계란 아랫면이 단단해졌을 때쯤 재료를 올리는 게 좋다. 그렇다고 계란이 윗면까지 완전히 익어버린 다음 야채를 올리면 야채와 계란이 따로 놀게 된다. 아직 윗면에 계란물이 흐물흐물하게 움직일 때쯤에 올려야 한다. 토마토를 준비했다면 이때 넣어주고, 기호에 따라 치즈를 넣어주어도 좋다. 이제 계란을 반으로 접는다. 한 번 접고 또 접을 수도 있는데, 야채를 너무 많이 넣었다고 하면 욕심부리지 말고 한 번만 접어주자.
덜 익힌 계란물이 흐르는 부드러운 맛을 원한다면 (치즈가 녹을 때까지만 기다렸다가) 접시에 담아주면 된다. 집에 있는 빵을 구워 함께 먹으면 좋다.
**양송이버섯은 예외. 양송이는 조리하면 굉장히 작게 줄어들기 때문에 적당히 잘라주면 된다.
***야채들이 중앙을 차지할 정도로만. 계란을 반 이상 덮어버릴 정도로 많으면 계란을 덮는 과정에서 재료들이 다 흘러내릴 수 있다. 볶은 야채들이 남았다면 나중에 볶음밥 등으로 활용하도록 하자.
포르투갈식 레시피는 계란을 말아야 하는 과정이 없어 더 간단할 수 있겠다. 여기에도 딱히 정해진 재료는 없는데, 내가 추천하는 조합은 감자, 양파, 양송이버섯, 그리고 베이컨이다. 계란은 다시 3-4알 정도 준비한다. 이 레시피에선 적어도 세 알은 준비하는 게 좋다.
여기선 야채를 큼직하게 썰어준다. 감자는 납작하고 두껍지 않게 썰어준다. 한 입에 들어갈 정도의 크기면 된다. 중요한 건 큐브 모양이 되지 않게 납작하게 써는 것이다. 양파도 네모나게 썰어주고, 양송이는 너무 얇지 않게 슬라이스 해 준다. 베이컨이 없다면 햄으로 대체해도 상관없다(물론 없다면 생략). 베이컨이나 햄은 다른 야채들보다는 작게, 심지어는 다지는 정도로 작게 썰어도 상관없다.
재료를 다 썰었다면 팬 위에 기름을 두르고 볶아준다. 감자가 익을 때까지 볶아주는 것이 포인트. 이때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한다. 야채가 익길 기다리는 동안 계란을 풀어주고 소금으로 약간 간을 해준다. 감자가 다 익었다면, 팬에 기름기가 아직 도는지 확인하고, (팬이 바싹 말라 있다면 기름을 약간 더 둘러주고) 야채들을 팬에 고르게 잘 펴준 다음 계란물을 부어준다****. 팬 뚜껑이 있다면 뚜껑을 닫고 계란이 익을 때까지 기다려주면 끝. 좀 더 부드러운 맛을 원한다면 계란이 완전히 익기 전, 계란 물기가 남아있는 상태에서 접시에 옮겨 담아주면 된다.
****다른 방법은 계란물을 풀어준 그릇에 익힌 야채들을 몽땅 담고 한 번 섞어준 다음 다시 팬에 기름을 두르고 부어주는 것이다. 두 가지 방법 모두 시도해봤는데, 둘 다 맛에 큰 차이는 없었다.
첫번째 레시피 일반 오믈렛
준비할 것 : 계란 2-4알, 원하는 채소, 소금, 후추
1. 준비한 야채들은 원하는 크기로 (가능하면 작게) 썰어서 준비한다. 2. 팬에 볶아주면서 소금과 후추로 간한다. 3. 계란물을 풀고 소금으로 간한다. 4. 볶은 야채는 따로 담아두고 팬 위에 다시 기름을 두르고 계란물을 올린다. 5. 계란이 절반정도 채 익기 전에 볶은 야채와 토마토/치즈를 계란 중앙에 올려준다. 6. 계란을 한 번 혹은 두 번 접어준다. 7. 원하는 만큼 더 익혀준 다음 접시에 담아낸다.
두번째 레시피 친구표 포르투갈식 오믈렛
준비할 것 : 계란 3-4알, 감자, 양파, 양송이버섯, 베이컨(혹은 햄), 소금, 후추
1. 감자는 두껍지 않게 한 입 크기로 슬라이스 해준다. 양파는 깍둑썰기, 양송이 버섯도 슬라이스해주고 베이컨은 작게 잘라준다. 2. 썬 재료들을 모두 팬에 볶는다. 베이컨이나 햄은 조금 나중에 넣어주어도 괜찮다.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해 준다. 3. 계란물을 풀고 소금으로 간한다. 4. 감자가 다 익었다면 재료들을 팬에 고르게 펴 주고 계란물을 부어준다. 혹은 계란을 풀어준 그릇에 볶아준 재료들을 모두 담고 한 번 가볍게 섞어준 다음 팬 위에 올린다. 5. 계란이 적당히 익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접시에 담아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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