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앨범] Leven Kail: Low Tide
아티스트 Leven Kali / 앨범 Leven Kali: Low Tide (2019)
여행지에 가면 그곳에서 머무는 동안 새로운 노래를 발견하려고 한다. 그 장소와 날씨와 잘 어울리는 노래를 찾으면 여행을 마치고도 노래를 재생할 때마다 그때의 기억과 향기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노래의 가사나 멜로디가 여행 중의 기분을 결정하기도 하고, 여행지에서의 설렘이나 외로움이 노래에 색을 입히기도 한다. 그렇게 추억이 입혀진 노래는, 비록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듣고 있다 하더라도 나만이 아는 이야기를 가진 노래로 탄생한다. 백예린의 <Our love is great> 앨범의 '야간비행'을 들으면 암스테르담의 해지는 저녁과 구불거리며 도시를 통과하는 트램에서의 풍경이 떠오르고, Childish Gambino의 'Feels like Summer'을 들으면 라이프치히의 공원에 누워 보았던 파란 하늘과 솟아오른 나무 차양이 그려진다. 오늘 소개할 앨범은 베를린에서의 기억이 담겨온 앨범 <Leven Kali: Low Tide> 다.
템펠호프 공항을 찾아간 날이었다. 5월의 베를린은 날씨가 매일이 다르게, 하루 중에도 몇 번씩 추워졌다 더워졌다를 반복하며 달라졌는데 그날은 구름이 꽤 두껍게 낀, 흐린 날씨였다. 간밤에 비가 내렸는지 축축히 젖어 있는 도시를 걸어 공항에 도착했을 때의 풍경은 황량 그 자체였다. 나치 시절 독일의 위세를 과시하기 위해 만들어진 위압적인 크기의 건축물과 높이 솟은 탑, 그리고 건물 입구마다 굳게 채워진 자물쇠들. 이제는 공항으로서의 역할은 하지 않고 전시장이나 건물 투어 용으로 쓰인다고 하는데 그날은 전시 준비 중으로 그마저도 볼 수 없었다. 기웃거리며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는데, 게이트로 가는 길, 체크인을 하고 수하물을 맡기는 곳, 전광판을 보고 대기하는 의자 등 시간을 그대로 멈춘 듯 공항의 모든 요소들이 그대로였다. 다만 사람의 손길을 타지 않아 먼지나 녹 등 세월의 흔적만 덧입혀진 듯 했는데, 그 둘 사이에서 오는 부조화가 쓸쓸하고 조금은 섬짓한 느낌을 주었다.
들어갈 수 없다는 아쉬움에 공항 앞에 넓게 펼쳐진 부지를 한참 맴돌다가 그곳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상가들이 모여 있는 구역으로 향했다. 버려진 공항의 이미지가 머릿속을 맴돌아 기분을 전환해보려고 노래를 재생했는데, 그때 처음 발견한 노래가 Leven Kali의 Mine이었다. 경쾌하게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걷다보니 지나가는 풍경들이 점차 바뀌기 시작했다. 노란 페인트로 칠해진 집과 짙은 녹색 잎의 가로수들, 길을 걷다 우연히 마주쳐 대화를 시작하는 사람들, 그 끝에 바비큐라고 한글로 적힌 식당이 있었고 테라스에 앉아 밥을 먹거나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레스토랑과 카페들이 줄지어 나타났다. 귀여운 동네였다. 차가 다니는 길에는 바닥에 밝은 녹색으로 동그란 그림들이 그려져 있었고, 지나다니는 자전거들은 빨강 파랑으로 알록달록했다. 전에 본 광경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 활기찬 기운이 평소보다 더 기분좋게 느껴졌다. 그래서인 것 같다. 이 앨범을 재생할 때마다 그때의 기분 좋은 전환이 떠오르며 그 도시가 막연히 더 그리워지는 이유는.
Leven Kali는 네덜란드 출신의 싱어송라이터이다. 자란 곳은 캘리포니아의 산타 모니카라고 한다. Joy라는 노래로 2017년 데뷔했고, 2018년 Syd와 싱글 Do U Wrong 을 발표하면서 더 알려지게 되었다. 그리고 2019년 Do U Wrong을 포함해 11곡이 수록된 Leven Kali: Low Tide를 발매한다.
개인적으로 노래를 들을 때 한 가수의 앨범에서 좋은 곡 몇 개만 골라서 듣는데, 이 앨범은 이동할 때마다 전곡을 틀어놓고 들으면서 다녔다. 그만큼 곡들이 개성있고 재미있는 앨범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그 중에서 가장 즐겨듣는 노래를 꼽는다면 Mine과 Do U Wrong, 그리고 Mad At U 일 것 같다. 아마 이 곡에 마음이 유독 더 반응한 것은, 여행지에서 누군가와의 만남을 기대했던 설렘이 작용했을 수도 있다(가사가 죄다 좋아하는 누군가에게 관심과 사랑, 연인으로의 발전을 꾸준히 요청하는 내용이므로). 가사가 곱씹어 들을만큼 좋거나 대단한 음악적 경험을 주는 노래는 아니지만, 가끔은 이렇게 뻔하고 좋아하는 마음에 푹 빠져 칭얼거리는 노래를 듣고 싶을 때가 있으니까, 그럴 때 재생해보면 좋을 것 같다.
It's been three whole weeks Since I saw your face And I need you here when I call your name
'Cause I get high when I think about love I get by when I think about us Don't know why, but I've been holdin' on so l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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